잠시 일을 쉬기로 한 30대 A씨는 퇴사 전 은행 마이너스 통장(신용한도 대출)을 만들어놓으려다 거절당했다. 정규직인 데다 신용점수도 낮은 편이 아니라 개설될 거라 자신했지만 오산이었다. A씨는 “은행에 문의를 해봤지만 ‘내부 규정에 따른 거절’이라는 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다른 은행도 알아봤지만, 예상보다 금리가 높아 망설이는 중”이라고 전했다.
은행권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신용대출의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행된 대규모 신용사면 등으로 전반적으로 차주(돈을 빌린 이)들의 신용점수가 높아진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해 대출 문턱을 높였다는 게 은행권 전언이다. 신용점수 1000점 만점에 900점을 넘는 고신용자가 급증하면서 제도권 금융에선 찾을 곳을 잃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차주들의 신용점수가 올라간 것은 은행들이 신용 인플레에 대응해 변별력을 높이고자 대출 심사를 강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코로나19와 고금리 등으로 연체 이력이 있던 서민·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신용사면을 한 바 있다. 핀테크 업체에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다양한 신용점수 올리기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개인신용평가기관 KCB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평가 대상 4953만3733명 중에서 신용점수 900점을 넘은 비중은 43.4%(2149만3046명)에 달했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중·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은행 문턱에 막힌 고신용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향하면서 풍선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탓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출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공급을 줄이면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미 돈을 빌린 이들도 이자비용이 커진다”며 “결국 신용도가 우량한 차주와 그렇지 않은 차주 모두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 저신용 차주에 대해서는 정부가 신용 보강을 통해 지급 보증을 해주거나 이들을 위한 전용 대환대출 플랫폼을 출시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인터넷은행도 신용점수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스코어링 시스템(Scoring System)을 고도화해 설립 취지에 걸맞게 건전한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