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대출 문턱… 취약차주 돈 빌릴 곳이 없다

신용인플레 심화에 대출 ‘좁은문’

5대銀 신규 신용대출 평균 점수 926점
신용사면에 점수 오르고 변별력 약화
은행권, 건전성 관리 위한 심사 더 강화
고신용자들조차 2금융권으로 발길
취약 차주 제도권 금융서 점점 밀려나
전문가 “중·저신용자 위한 대책 필요”

잠시 일을 쉬기로 한 30대 A씨는 퇴사 전 은행 마이너스 통장(신용한도 대출)을 만들어놓으려다 거절당했다. 정규직인 데다 신용점수도 낮은 편이 아니라 개설될 거라 자신했지만 오산이었다. A씨는 “은행에 문의를 해봤지만 ‘내부 규정에 따른 거절’이라는 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며 “다른 은행도 알아봤지만, 예상보다 금리가 높아 망설이는 중”이라고 전했다.

은행권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신용대출의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행된 대규모 신용사면 등으로 전반적으로 차주(돈을 빌린 이)들의 신용점수가 높아진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해 대출 문턱을 높였다는 게 은행권 전언이다. 신용점수 1000점 만점에 900점을 넘는 고신용자가 급증하면서 제도권 금융에선 찾을 곳을 잃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전국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4월 신규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는 926.45점으로 집계됐다. 전달보다 0.5점 상승한 수치로, 지난해 4월(917.86점)과 비교하면 9점 가까이 올랐다.

인터넷전문은행 3사(케이·카카오·토스뱅크)에선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들 3사의 신규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지난해 12월 872.84점에서 올해 1월 901.74점, 2월 906.54점, 3월 921.91점, 4월 925.10점까지 뛰어올랐다.

신규 마이너스 통장 개설을 위한 신용점수도 오름세를 보인다. 5대 은행에선 지난 4월 이 같은 고객의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는 956.9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945.5점에서 1년 만에 11.4점이나 높아졌는데, 보통 신용점수가 950점을 넘기면 초고신용자로 분류된다. 앞으로도 초고신용자가 아니면 시중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차주들의 신용점수가 올라간 것은 은행들이 신용 인플레에 대응해 변별력을 높이고자 대출 심사를 강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부는 최근 코로나19와 고금리 등으로 연체 이력이 있던 서민·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신용사면을 한 바 있다. 핀테크 업체에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다양한 신용점수 올리기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개인신용평가기관 KCB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평가 대상 4953만3733명 중에서 신용점수 900점을 넘은 비중은 43.4%(2149만3046명)에 달했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중·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은행 문턱에 막힌 고신용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향하면서 풍선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탓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출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공급을 줄이면 금리가 올라가면서 이미 돈을 빌린 이들도 이자비용이 커진다”며 “결국 신용도가 우량한 차주와 그렇지 않은 차주 모두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 저신용 차주에 대해서는 정부가 신용 보강을 통해 지급 보증을 해주거나 이들을 위한 전용 대환대출 플랫폼을 출시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인터넷은행도 신용점수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스코어링 시스템(Scoring System)을 고도화해 설립 취지에 걸맞게 건전한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