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내걸어 공분을 일으킨 부산 한 아파트 입주민이 논란 끝에 욱일기를 철거했다.
그는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자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 거로 보인다.
7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따르면 해당 입주민 A씨가 의사인 것으로 알려지자 온라인에는 그의 실명과 병원명 등 신상정보가 노출됐다.
이에 앞서 분노한 일부 시민들은 아파를 찾아가 현관 앞에 오물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전날 오전 부산 수영구 남천동 한 주상복합건물 고층 창문에 욱일기 두 개를 내건 입주민 A씨는 이날 오후 욱일기를 철거했다.
A씨는 집 현관문에 ‘여행 가서 아무도 없다’, ‘대국민 사기극은 이제 끝났다’는 내용의 종이를 붙였다.
A씨는 지방자치단체와 법적 갈등을 빚는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이같은 일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직업이 의사임을 밝히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헌절, 광복절에도 욱일기를 게양하겠다고 했다.
욱일기는 철거됐으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A씨의 의사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A씨 실명과 그가 근무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도 공개됐다.
또 이 과정에서 동명이인인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의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피해 의사 측은 “공교롭게도 이름과 직업까지 같아 당사자로 오해받고 피해를 입고 있다”며 “현재 신상이 털리고 있는 의사는 욱일기를 내 건 의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저기 소문이 잘못 퍼지고 있다. 혹시 단톡방이나 커뮤니티에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정정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달 중순부터 일장기를 여러 차례 내걸었다가 이날 욱일기를 달았다. 지난달부터 주변 민원과 항의전화를 수십통 받아온 주상복합건물 관리사무소는 관계기관에 문의해봤지만 이 행위를 제재할 별다른 방법이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욱일기(전범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사용한 군기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전범기는 일본 현지에서조차 “전쟁의 참혹함과 희생자의 아픔을 되살린다”는 이유로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다만 국내에는 욱일기 사용에 대한 관련해 처벌 방법이 없어 제재는 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일장기·욱일기를 내거는 행위에 대한 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요즘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이럴 때일수록 비난과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일들을 계기 삼아 강력한 처벌법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인터넷에는 지금도 잘못된 정보가 나돌고 있다.
언론에서 확인하지 않은 정보가 누리꾼 사이에서 공유되며 엉뚱한 피해를 낳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적 제재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현행 사법체계를 부정·악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이처럼 일반인 신상 털기가 잇따르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각종 개인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검색도 비교적 수월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대 범죄자인 경우 신원을 보호하는 게 합당하냐는 시각도 있다. 다만 사적 영역에서 특정인의 신상이 낱낱이 유포될 경우 자칫 사건의 본질과 관련 없는 피해를 일을 킬 수 있고, 실제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
사적 제재 사이트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적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도 저하를 지적한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결국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건 국가가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사적 제재는 2차 피해나 공권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절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