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F-14 전투기와 조종사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탑건’(1985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F-14가 항공모함에서 이함하는 오프닝 장면일 것이다.
F-14가 멋지게 비행하고 공중전을 벌이는 모습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탑건’은 한국에서도 수많은 소년의 장래희망을 전투기 조종사로 바꿔버렸다.
공군사관학교 59기로서 지난 2011년 임관했던 최인준 소령도 ‘탑건’의 영향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전투조종사의 꿈을 꾸던 최 소령은 F-14처럼 복좌(2인승) 항공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지난 2013년 3월 제153전투비행대대에 전입한 후 F-4E 팬텀(유령)에 탑승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F-4E를 조종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최 소령은 교관 자격을 지니고 있고, 1010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난 7일 경기 수원 기지에서 열렸던 F-4E 퇴역식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최 소령은 F-4E 퇴역식을 앞두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작이 어려웠고 난이도도 높았지만 아쉽고 서운하다”며 “그래도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을 지킨 F-4는 국민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 어렵지만 전천후 능력 있어”
F-4E는 F-14처럼 2명이 조종석 앞뒤로 타는 복좌 기종으로서 F-4 계열 중에선 최신형이다.
1969년 F-4를 첫 도입한 한국 공군은 F-4E를 중심으로 187대를 사용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지난 7일 퇴역식을 갖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번에 퇴역한 F-4E는 제작사인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現 보잉)가 생산한 F-4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든 기체다. 한국 공군에도, 세계 항공역사에도 큰 의미가 있는 이벤트였다.
최 소령은 F-4E를 처음 조종했을 때의 어려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F-4E를 후방석에 탔는데 좌석이 너무 좁고 답답해 멀미를 심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며 “전방석에서 처음 비행을 할 땐 조작이 생각보다 어려워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F-4E는 최대무장탑재량이 7.3t에 달할 정도로 기체가 무거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KF-16 등과 달리 컴퓨터로 제어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시스템이 없다. 아날로그 비행기인 셈이다.
개인 역량에 따라 조종과 비행이 영향을 받으므로, 조종사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업무도 많다. 실제로 소링 이글을 비롯한 대규모 공중훈련에서 F-4E 조종사의 조종 강도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 소령은 “(F-4는) 속도영역에 따라 조종특성이 크게 달라진다. 다른 전투기들보다는 조금 더 조종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며 “육중한 동체로 인해 다른 기종보다 기동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 같은 임무를 수행해도 난도가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조종이 쉽지 않은 F-4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최 소령은 다양한 일을 겪었다. 위험한 순간과 환희에 찬 순간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슬럼프를 겪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최 소령은 아름다웠던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는 “후방석에 탑승해 야간 비행을 하던 중 전방석 조종사 선배님이 ‘별을 봐라, 참 아름답지 않냐’고 하셨다. 정말 아름다워 몇 초간 멍하니 하늘을 봤던 기억이 난다”며 “비행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시기가 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 장면”이라고 회고했다.
◆강력한 공격력 지녀…국가 핵심 자산
조종이 쉽진 않으나 F-4E는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기종이다. 지상 폭격과 적 항공기 침투 저지, 근접항공지원 등 다양한 항공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전천후 전폭기인 셈이다.
한국 공군은 F-4E에 AGM-142 팝아이 중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탑재, 전략적 타격력도 부여했다.
1999년 이스라엘에서 들여온 AGM-142 팝아이 미사일은 도입 당시 북한군 방공망 사정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 지상 표적을 파괴할 수 있었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2000년대 F-15K를 도입하면서 슬램 이알(SLAM-ER)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함께 들여오기 전까지 F-4E와 AGM-142 팝아이 미사일은 현무 탄도미사일 등과 더불어 대북 억제력의 핵심 축을 이뤘다.
최 소령은 “F-4E는 공대공 공대지 능력이 뛰어난 항공기로 1만5000파운드(6.8t)의 폭장량과 뛰어난 레이더 성능을 기반으로 한 미사일 운용 능력이 F-4E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날로그적 요소가 많이 있지만,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운용하며 전략적인 목표물을 정밀 폭격할 수 있다”며 팝아이 미사일을 통한 전략 타격 능력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F-4D가 2010년, 정찰형인 RF-4C가 2014년 퇴역한 것과 달리 F-4E가 올해까지 쓰였다는 것은 AGM-142 팝아이 미사일 플랫폼으로서의 역할 때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최 소령은 AGM-142 팝아이 미사일에 대해 “정확성과 파괴력, 사거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훌륭한 무장이고, 전략적인 표적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다른 공대지 무장들과 비교하면 준비하고 신경 쓸 것들이 많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무장이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예민한 무장이기 때문에 항상 항온·항습 환경 하에서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F-4E는 우수한 전투기지만, 베트남전쟁 당시부터 쓰였던 기종이다. 한국 공군이 F-4E를 지나치게 오랜 기간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최 소령은 “F-4를 오랜 기간 사용한 것은 F-4가 공군과 국가에 가치 있는 자산이었기 때문”이라며 “F-4는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포함해 유사시 군의 힘을 투사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장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비사들의 헌신과 장기운용 항공기에 대한 철저한 관리로 처음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와 비교해봐도 전혀 떨어지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10년은 더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퇴역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최 소령은 F-4를 통해 남북 공군력이 역전됐고, 이것이 F-4가 한국 공군에 갖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는 “1969년 미국으로부터 F-4D를 공여받는 순간이 남북의 공군력이 역전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마음이 모여서 도입된 방위성금헌납기로 시작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 국가와 국민을 지켰다”고 밝혔다.
이어 “F-4는 오랜 기간 동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영공방위의 핵심전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역사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기종”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F-4는 한국 공군 일선에서 물러났다. 3만5800파운드의 추력을 지닌 J79 엔진 2개가 내뿜는 강력한 엔진음과 열기는 한국 공군기지에서 더 이상 느낄 수가 없다. 보라매공원을 비롯한 기념 공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 소령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F-4가 우리 곁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군 생활 대부분을 함께 해온 F-4가 떠나는 것이 굉장히 아쉽고 서운하다”면서도 “F-4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퇴역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소령은 “F-4는 역사 속으로 물러나지만 국민의 마음이 모인 방위성금헌납기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을 지킨 F-4는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