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보니까 누구 퇴출시켜라, 이런 얘기가 나오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6일 당원 대상으로 당헌·당규 개정안 의견 수렴 등을 위해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도중 이렇게 말했다. 실시간 채팅창에서 특정 인사에 대한 비난이 계속 올라오자 지적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런 사람은 자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 아웃’, ‘△△△는 위험인물’, ‘□□□은 9찍’ 등 여러 민주당 인사와 친민주당 성향 방송인·전문가에 대한 노골적 비난이나 퇴출 요구가 계속됐다. ‘9찍’은 조국혁신당 지지자를 비하하는 용어다.
사실상 강성 당원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이 대표 또한 종종 이렇게 특정 인물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강성 당원의 행동에 애를 먹기도 한다. 이날 유튜브 라이브에서 이 대표가 “집단 지성의 일부”라 감싸기도 했던 강성 당원의 혐오는 상대 진영보다 자기 진영 내 인사에게 보다 강하게 표출된다. 이들은 진영 내 이견에 대해 용납하지 않는다. 실제 민주당원들이 활동하는 당 공식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봐도 오히려 야권 인사들을 겨냥한 증오에 가까운 비난이 매우 높은 빈도로 확인됐다. 이는 자연스레 민주당 의원들의 의사 표현이나 행동을 옭아맬 수밖에 없다. 실제 일부 강성 당원들은 자당 의원들에게 명백한 맹종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당 안팎에서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 ‘국회의장 후보 경선 시 권리당원 의사 20% 반영’ 당헌·당규 개정안조차 사실상 최근 국회의장 후보 경선 결과에 대한 강성 당원의 요구가 민주당 지도부를 옭아맨 결과물이다.
◆“넌 그냥 ‘전구다마’야”
9일 세계일보가 민주당원 커뮤니티 ‘블루웨이브’ 내 ‘인기글’ 총 281건(2024년 1월1일∼6월6일 게재)을 분석한 결과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두고 경쟁한 추미애 의원과 우원식 신임 국회의장이 모두 97회, 45회씩 언급돼 빈도 기준으로 각각 5위와 12위에 올랐다. 지난달 16일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당원 지지가 강했던 추 의원이 낙선하자 ‘우원식 후보 선출은 무효입니다’, ‘우원식 자진사퇴를 요구합니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반발하는 게시물이 인기글에 등재됐다.
여기에 더해 우 의장 득표수(89표)가 알려지면서 ‘당당하면 우원식 찍은 89명은 커밍아웃하라’, ‘국회의장 후보자별 투표 의원 명단 공개 요청’ 등 비밀투표 원칙을 훼손하는 글이 당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인기글 중에는 ‘22대 의원 후원금은 국회의장 투표를 밝힌 의원에게만 하자’며 후원금을 ‘무기’로 우 의장 투표 인원을 색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 ××들 당선된 지 며칠 만에 배신을 때리네’란 인기글에서 보이듯 강성 당원들은 우 의장 투표를 배신이라 규정했다. 이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당내 비주류를 비하하던 혐오 단어인 ‘수박’(38회·15위)이 동원됐다.
◆‘당심’은 ‘민심’이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선수별 간담회나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연석회의 등을 통해 당의 방향성으로 정립하고 있는 ‘당원 중심 정당’ 또한 사실 이런 인식과 결을 같이 하는 것이다. 지도부 인사들은 이와 관련해 자주 ‘시대가 변했다. 민주당도 변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TF(태스크포스) 단장을 맡아 당헌·당규 개정을 이끈 장경태 최고위원 또한 최근 “당원 참여를 늘리는 과정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직자 출신 한 의원은 “국회의장 선출도 마찬가지고 당원들이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권한을 원하고 있다”며 “당장 우리 당 수입 구조만 따져봐도 그들의 요구가 충분히 일리가 있단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분명 세금을 받는 ‘공당’인 동시에, 때로는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당비에 의존하는 ‘당원들의 정당’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민주당 자료를 보면 큰 선거가 없었던 2021년과 2023년에는 당비 수입이 각각 284억원과 268억원으로 국고보조금(211억원·223억원)보다 40억∼70억원 더 많았다. 대선이 있었던 2022년에는 비록 국고보조금(685억원) 대비 20% 이상 적긴 하지만 무려 526억원이나 당비 수입으로 책정됐다. 당대표, 최고위원 등이 따로 내는 직책 당비를 고려하더라도, 민주당 권리당원 급증세를 고려하면 경제적 측면에서 당원의 기여가 상당하단 걸 추정해볼 수 있다. 이 대표가 민주당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된 2021년 권리당원 수는 129만5909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대선과 전당대회를 치른 2022년 140만2809명이 됐고, 지난해(6월 말 기준)에 이르러 전년 대비 75% 가까이 늘어난 245만4332명까지 증가했다.
전문가들도 이런 현상과 관련해 민주당이 당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건 ‘정당 자율의 영역’인 만큼 반대할 사안이 아니란 입장이다. 다만 국회의장 선출 참여의 경우 ‘정당 자율의 영역’ 밖에 있는 사안인 만큼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당원의 생각을 더 많이 반영한다는 건 정당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라면서도 “다만 그건 공천 참여 보장 등 형태로 구현돼야 하는 것이지, 국회의장 선출에 권한을 주는 건 진짜 당내 민주주의는 외면한 채 엉뚱한 데를 두드리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 또한 “권리당원 급증 등 현실 변화에 맞춰 당을 운영하는 게 자연스러울 순 있지만, 그 또한 결국 대안 정당을 자처한다면 민심(국민의 마음)을 겨눠야 한다”며 “당심(당원의 마음)이 곧 민심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대의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4·10 총선 압승으로 원내 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장 후보 선출에 당원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트기 시작하면서다. 민주당은 ‘당원 중심 정당’이란 구호로 이 변화를 선전하지만, 당원에게 국회의원 권한을 양도하는 건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엄연히 반한단 지적이 대다수다. ‘팬덤정치’가 횡행하는 현 정치 문화에서 ‘제왕적 당대표’ 현상 또한 강화할 수밖에 없다. 제왕적 당대표 현상은 대의민주주의의 주역인 정당 내 건전성을 헤친다. 세계일보와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는 공동기획으로 총 3회에 걸쳐 시리즈 ‘위기의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최근 민주당의 당헌·당규 개정 논란, 심화하는 제왕적 당대표 현상 등 대해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공동기획: 세계일보·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