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참전 기록 외교관 노력·佛 협조로 8명 확인 유엔공원 묻힌 1명 유족도 찾아내 추가 발굴 및 예우에 최선 다해야
‘모로코’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프리카 서북부에 있는 나라 말이다. 프랑스 지중해 동부해안의 도시국가 ‘모나코’와 헷갈릴 수 있다. 북쪽이 지중해와 접해 있기는 하다.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카사블랑카는 이 나라 최대 도시다. 이밖에 사하라사막, 붉은 건물, 낙타 정도가 연상되는 단어가 아닐까.
언뜻 우리와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어 보인다. 3년 전 소말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모가디슈’ 개봉 당시 촬영지로 잠깐 관심을 받기는 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가 멀다. 비행기로 프랑스 파리나 카타르 도하,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거쳐 20시간 넘게 날아가야 하는 곳이다. 코로나19 전 한창 많이 찾을 때 한국인 방문객이 한해 2만∼3만명이었다고 한다. 양국간 교역 규모는 5억∼6억달러에 그치고 있다.
모로코가 6·25전쟁 참전국임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규모는 작지만 이역만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싸운 모로코인들이 있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모로코 참전 용사는 8명이다. 전사자 2명은 부산 유엔공원에 잠들어 있다. 프랑스군 안장자 47명 명단에 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국이 아니라 프랑스 군복을 입고 참전했다. 모로코는 1956년 독립 전까지 프랑스 보호령이었다.
프랑스군에 속해 6·25전쟁에 참여한 다른 아프리카 나라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제리, 튀니지, 세네갈 등이 그렇다. 모로코를 당당히 6·25전쟁 참전국 명단에 올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다른 나라들은 당시 프랑스 직할령이었다. 프랑스 일부였다는 뜻이다. 모로코는 보호령이라서 자치권을 행사했다. 참전은 프랑스 강제징집이 아니라 자발적 의사로 이뤄졌다. 6·25전쟁 참전 정당성을 인정한 모하메드 5세 술탄이 포고령을 통해 자국민의 참전을 독려했다.
모로코의 6·25전쟁 참전 역사는 일부의 기억으로 묻힐 뻔했다. 몇몇 외교관의 노력이 역사를 되살려냈다. 2012년 이태호 주모로코 대사가 확인에 나섰으나 자료가 없어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2021년 7월 부임한 정기용 대사는 유엔공원 프랑스군 47명 명단에 주목했다. 아랍계로 보이는 2명의 이름을 추려 주모로코 프랑스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양국 협조로 프랑스 참전용사 및 전쟁피해자 사무처(ONACVG) 기록물 등을 통해 2명 외에 다른 참전용사 6명까지 확인했다.
유엔공원에 안장된 참전용사 무흐 벤카두르 엘 아스리의 딸 프레탐 엘 아스리(82)는 부친 참전 당시 겨우 4살이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힘든 삶을 살았다. 부친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싸우다가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숨져 묻혔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80년이 거의 지나서야 부친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잊지 않고 찾아줘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가보훈부 초청으로 딸과 함께 우리나라를 찾아 아버지 묘역에 참배했다.
유엔공원의 1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대계 모로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모로코는 아랍 국가 중에서도 이스라엘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수백년간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아랍 무어인들이 15세기 모로코 등으로 물러날 때 유대인들과 함께한 역사가 있다. 오드레 아줄레(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사무총장이 유대계인데, 그의 아버지가 모로코 왕의 자문역까지 맡은 모로코 출신이다. 모로코 참전에는 양국뿐 아니라 프랑스, 아랍, 이스라엘이 얽힌 서사가 담긴 셈이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 미국 워싱턴의 6·25전쟁 참전용사 추모비에 적힌 문구다. 6·25전쟁 3년여간 국군 13만7899명과 유엔군 4만670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지켜낸 자유다.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자유에는 모로코인들이 흘린 피와 땀 방울도 스며 있다. 6·25전쟁 74주년이 소중한 이웃 모로코의 참전을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많은 참전용사를 찾아내 희생을 기리고 예우하는 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