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해 현장체험학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A씨의 반 아이가 넘어져 팔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응급처치 후 보호자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아이의 상태만 걱정했을 뿐 문제가 커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며칠간 학부모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 아버지는 A씨가 학생 관리에 소홀해 사고가 났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A씨를 몰아세웠다.
아이가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난 사고란 것이 확인되면서 사태는 진정됐지만, “선생이 돼서 아이도 안 보고 뭐 했냐”는 학부모의 말은 A씨에게 상처로 남았다. 최근 춘천지법에서 진행 중인 교사들의 재판 소식을 접하고 그가 “남의 일이 아니다”란 생각을 했던 이유다. 강원의 초등학교 교사 2명은 2022년 현장체험학습 도중 교통사고로 학생이 숨진 뒤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교사의 잘못이 아닌 불의의 사고로도 법정에 서고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충격적”이라며 “전에는 운이 좋아서 재판까지 안 갔던 것이고, 앞으로 언제든 비슷한 일이 나한테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고 털어놨다.
최근 강원 지역 교사들의 재판을 계기로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교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가 무조건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많은 교사가 현장체험학습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소풍날이 교사들에겐 공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현재 현장체험학습은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구조라며 교육 당국의 교사 보호 방안이 담보되지 않으면 현장체험학습을 떠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1일 초등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2022년 11월 강원 속초의 한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현장체험학습을 왔던 6학년 학생이 주차하던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사고를 낸 70대 버스 운전기사를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학생을 인솔했던 교사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열린 1차 공판에서 검찰은 “교육현장의 모든 사고를 선생님들이 책임질 수는 없다”면서도 “수사 결과 이 사고는 선생님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고가 아니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선생님들이 아이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주의를 다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주장했다.
◆교사 과실치사 재판에 교사들 충격
교사에게 교통사고의 책임을 묻는 재판에 교직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 재판에서 교사들의 혐의가 인정된다면 추후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짙다. 교원단체들은 수만 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제출하며 기소된 교사들의 무죄를 촉구하고 있다. 경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사 한 명이 다수의 아이를 보기 때문에 교사가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며 “최대한 조심해야겠지만, 버스 기사 부주의 등 교사의 잘못이 아닌 사고에도 교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다”고 말했다.
강대규 변호사(대한중앙춘천사무소)는 “통상 이런 교통사고는 운전기사 등 행위를 직접 한 사람에게 법률을 적용했는데 이번엔 교사도 기소했다”며 “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봐야겠지만, 검사가 기소했다는 것은 앞으로 또 현장체험학습 사고 발생 시 교사를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태는 현장학습 거부로까지 번지고 있다. 재판 소식이 알려진 뒤 교사들이 부담을 호소하면서 사건이 발생한 강원 지역을 포함한 전국 많은 지역 학교가 올봄 체험학습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강원 춘천의 한 초등학교는 학부모에게 보내는 안내문에서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교사의 불안감 해소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기에서는 현장체험학습 축소를 둘러싸고 교사와 학부모가 대립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초등교사노조에 따르면 B초등학교는 올해 2월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세웠으나 강원 교사 재판을 계기로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에 학부모의 60%는 동의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이 현장체험학습을 안 간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등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부모들이 교사를 아동학대와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밝히면서 교원단체가 학교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등 갈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교원단체 “교사 보호 대책 필요”
교사들은 교사 보호 대책이 없다면 현장체험학습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장체험학습은 법적 의무가 없고, 학교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진행돼 왔다. 학교에서 꼭 추진해야 하는 행사는 아니라는 의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사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힘들어도 감수하고 가는 건데 괜히 갔다가 사고 나면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스승의날을 맞아 전국 유·초·중·고·대학 교원 1만132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명 중 1명(52.0%)은 ‘현장체험학습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93.4%는 ‘현장체험학습 사고로 인한 학부모 민원, 고소·고발이 걱정된다’고도 했다. 교총은 “현장체험학습이 필요하다면 교사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과 제도, 안전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조 위원장도 “교사가 교육활동 중 모든 사안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 교육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부가 체험학습에 대한 법적 책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원단체들은 ‘교사에게 중과실이 없다면 사고가 발생해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사의 과실이 없는 안전사고에 대해선 교사에게 일종의 ‘면책권’을 주자는 것이다. 교총 회장 출신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최근 이런 요구를 반영해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교육활동 중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와 위급상황에서 교원이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 “소송 최대한 지원”
다만 면책권은 예민한 문제여서 법 통과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면책권은 다른 직종들과의 형평성, 면책조항을 법체계에 넣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등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재 한국 법은 면책권이 있는 조항이 거의 없고, 사법당국은 수사 단계나 법원에서 과실 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2008년 수영장에 현장체험학습을 갔던 초등학생이 사망한 사건에서도 담임교사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대법원은 ‘피해 학생을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관찰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교육부는 대신 교사가 현장체험학습 사고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면 교원배상책임보상보험 등을 통해 소송 과정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강원 교사들 사건의 경우 이 같은 교권 강화 대책이 발표되기 전 발생한 사안이라 소급 적용이 불가능해 간접 지원만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들이 억울한 일이 없도록 최대한 도울 것”이라며 “교육청 의견도 듣고 방안을 계속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대한교육법학회 회장)은 “면책권이 어렵더라도 제도 개선은 필요한 상황”이라며 “소송 시 교육청 역할을 강화하는 식의 입법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면책권이 있어도 학생이 제기하는 소송 자체를 막을 수 없고, 교사들이 소송에서 느끼는 고충이 큰 만큼 현장체험학습 관련 소송이 제기됐을 때 교육청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관은 “교육청마다 천차만별인 현장체험학습 안전수칙도 어느 정도 통일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부가 교육청 의견을 수렴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표준안을 만들고, 교육청이 참고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