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차려 사망’ 훈련병 쓰러지자…“일어나, 너 때문에 애들이 못 가고 있잖아”

병원 실려가던 훈련병, 잠시 의식 찾았을 때 “죄송하다”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 MBC 캡처

육군 12사단에서 발생한 '훈련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숨진 훈련병에게 군기 훈련(얼차려)을 지시한 중대장이 쓰러진 훈련병 후송 구급차에 동승해 당시 상황을 축소 설명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나왔다.

 

군기훈련이란 지휘관이 군기 확립을 위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장병들에게 지시하는 체력단련과 정신수양 등을 말한다. 지휘관 지적사항 등이 있을 때 시행되며 얼차려라고도 불린다.

 

군인권센터는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해자 중대장을 환자 후송 선탑자로 지정하고 신교대 의무실 의무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등 부대 측의 초동조치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유가족으로부터 확보한 훈련병의 의무기록을 들었다.

 

중대장의 사건 축소 진술로, 해당 훈련병이 최초로 후송됐던 속초의료원의 의무기록과 이후 후송됐던 강릉아산병원 입원 기록에 중대장의 가혹 행위에 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속초의료원 간호기록지 최초 기재 사항은 '군대에서 뛰던 중 쓰러지면서 환자 확인 후 열 40도 이상이어서 군 구급차를 타고 내원함'"이었다며 "강릉아산병원 입원 기록에도 '부대 진술상 4시반께부터 야외 활동 50분가량 했다고 진술, 완전군장 중이었다고 함'이라고 적혀있을 뿐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얼마든지 상황을 축소해서 보고할 수 있는 사람을 환자 보호자 역할을 수행할 선탑자로 보냈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경찰은 최초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12사단 신교대 군의관, 간부, 속초의료원 의사 등에게 진술한 사람이 중대장이 맞는지, 맞다면 중대장이 완전군장 하에 50분 동안 달리기·팔굽혀펴기·구보 등 가혹한 얼차려를 강제했다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진술했는지 면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훈련병이 쓰러진 뒤 최초로 방문한 신병교육대의 의무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를 본 의무병이 달려와 해당 훈련병의 맥박을 체크했는데, 군기훈련을 명령한 중대장은 “일어나, 너 때문에 애들(군기훈련 받던 다른 훈련병들)이 못 가고 있잖아”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 소장은 전날 오후 군 병원을 찾아 12사단 신병교육대 의무실 의무기록 사본 발급을 신청했으나 해당 훈련병과 관련한 의무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기록이 없다는 것은 군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한 행위"라고 설명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훈련병 사망 당시 병원 기록에 적힌 직접 사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에 따른 패혈성 쇼크'라고 밝혔다. 직접 사인의 원인은 '열사병'으로 기록됐다.

 

이런 가운데 육군훈련소장, 육사교장, 육군 교육훈련부장을 지낸 군 훈련 전문가인 고성균 예비역 소장(육사 38기)은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고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 전 소장은 11일 저녁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서 "간부가 전투도 아닌 얼차려 군기 훈련을 시키다가 눈앞에서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참 참담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과거 가혹행위 등이 있어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시행령이라는 것을 법으로 정해놨는데 이번엔 그런 것들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군기 훈련 규정을 전혀 안 지켰다"고 지적했다.

 

일부 예비역들이 "어떻게 군인이 완전군장 뜀뛰기 정도를 못하냐" "나 때는 안 그랬다"는 등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선 "옛날과 지금 여러 가지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물리쳤다.

 

또 "(그분들이 훈련받을 때) 훈련소에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특수부대에 가서는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한 건데 이를 착각하는 것 같다"고 완전무장 구보 훈련은 특수부대원이나 체력적으로 단련된 현역들에게나 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1978년) 육군사관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1주 차에는 뜀걸음으로 3㎞, 그다음에는 6㎞ 등 순차적으로 늘려갔다"며 "(이번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경우는 없다"라는 사례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미국 육사(웨스트포인트)에서 기초군사훈련 받는 생도에게 얼차려를 줄 경우 상급 생도가 함께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며 "우리 육군도 이런 것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 군기 훈련, 얼차려를 시킬 때 군기 훈련을 부여하는 지휘관( 이번 같으면 중대장)이 함께 군기 훈련을 하도록 규정 보완 △ 리더십을 제대로 갖춘 우수한 간부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리 규정과 시스템이 좋아도 결국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수 간부를 획득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제안했다.

 

앞서 숨진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오후 5시 20분쯤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군기 훈련을 받다 쓰러졌고 속초의료원으로 후송됐다.

 

후송 당시 훈련병은 기면(자꾸 잠에 빠져들려는 것) 상태였고 잠시 의식을 찾았을 땐 자신의 이름과 몸에서 불편한 점을 설명한 뒤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상태가 악화해 병원으로 전원 돼 치료받았으나 이틀 뒤인 25일 오후 끝내 사망했다.

 

군 당군 조사 결과 군기 훈련 과정에서 완전군장 구보, 팔굽혀펴기 등 육군 규정을 위반한 사실들이 드러났고, 군은 이를 지시한 중대장 등 간부 2명에 대해 과실치사 등 혐의를 적용해달라는 취지로 사건을 강원경찰청에 넘겼다.

 

경찰은 약 2주 가까이 참고인 조사만 진행하다 지난 10일 군기 훈련을 지시한 중대장과 부중대장 입건했다. 구체적인 소환 시기는 밝히지 않았으나 일정을 조율한 뒤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