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와 사법부가 충돌할 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5공 전두환정부 시절인 1985년 10월 야당인 신민당은 소속 의원 102명의 이름으로 유태흥 당시 대법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헌정사상 판사를 겨냥한 최초의 탄핵 시도였다. 야당 의원들이 유 대법원장에게 분노한 것은 그가 단행한 비상식적인 법관 인사 때문이었다. 시국사건에서 정권 측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지방으로 좌천시킨 데 이어 언론 기고문에서 이를 비판한 법관에게도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자 여론이 돌아선 것이다. 대법원 입장에선 여당인 민정당이 국회 다수당이란 점이 다행이었다. 의원 264명이 투표한 결과 대법원장 탄핵소추안은 찬성 120표, 반대 143표, 기권 1표로 부결됐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내 대법정에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공판이 열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사태 이듬해인 2009년 11월 신영철 당시 대법관 탄핵소추안이 야당인 민주당에 의해 발의됐다. 이명박정부 임기 첫해인 2008년 신 대법관은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법원장이었다. 촛불시위에 가담한 이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무더기로 법원 재판에 넘겨지던 때였다. 그가 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관련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에도 국회는 여대야소였다. 여당이자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탄핵소추안 상정을 위한 본회의 개최를 거부했고 결국 안건은 폐기 수순을 밟았다.

 

문재인정부 임기 말인 2021년 2월 임성근 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판사 탄핵안 가결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내 과반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탄핵을 주도했다. 그들은 임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던 2015년 중앙지법에 계류된 특정 형사사건 선고 결과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고위 법관으로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 부장판사가 이미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법복도 벗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에서 퇴직해 파면 결정이 불가능하다”며 탄핵소추안을 각하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후보자 시절이던 2023년 1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요즘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국회를 들었다 놨다 하고 여당이자 소수당인 국민의힘은 지리멸렬한 가운데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도 좌불안석이다. 여러 건의 범죄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고 결과에 따라서 거야가 수사 담당 검사는 물론 재판 담당 판사까지 탄핵할 뜻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야당 의원은 대놓고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후보자 시절인 지난해 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관에 대한 무분별한 탄핵 논의는 자칫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약화할 우려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후배 판사들이 부당한 정치 공세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조 대법원장이 ‘사법권 독립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