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오물풍선의 나비효과

北 움직임에 일희일비 말고 차분한 대응태세 갖춰야

북한이 비닐과 폐지, 플라스틱을 포함한 오물을 넣은 풍선을 네 차례에 걸쳐 남쪽으로 띄웠다. 남쪽에서 식별된 것만 약 1000개다. 6·25전쟁 이래 70여년 동안 전단이 내륙 지역에 살포된 사례는 무수히 많았지만, 풍선에 쓰레기를 담아 뿌리는 행위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은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보복 차원이다. 통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심의 이반이다. 이는 폐쇄적인 정치체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유입된 정보가 정부의 선전과 다르면 국민의 마음속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싹트게 된다.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고한 정치적 기반을 지닌 정권도 살아남을 수 없다. 전단 살포로 대표되는 심리전이 노리는 부분이 이것이다. 북한이 외국 소식을 주민들이 접하지 못하게 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제력을 약화할 수 있는 모든 요소에 적대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수찬 외교안보부 차장

그런 북한 땅에 김 위원장 비난 전단과 한국 드라마 등이 담긴 USB가 날아든다면 북한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까. 우리 군인과 경찰, 소방관, 공무원들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오물 풍선을 수거·폐기하느라 곤욕을 치르는 모습에서 대북 전단에 대한 북한의 시선, 외부 소식 전파에 따른 내부 불안 등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떨까. 북한의 오물 풍선이 나타났지만 혼란은 없었다. 군·경은 풍선을 빠르게 수거했고, 대다수 국민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안보불감증’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종잇조각과 USB가 휴전선을 넘어온 것에 대해 오물 세례를 퍼붓는 북한보다는 우리 사회가 훨씬 안정적이고 건전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도발해도 국민은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체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수많은 사람이 치열한 투쟁 끝에 쟁취한 민주주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 민주주의가 한국 국민과 사회를 북한보다 우월하게 만들고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지니도록 해준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 같은 특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2500년 전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는 군사국가 스파르타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몰자 추도사에서 “군사기밀을 훔치는 것을 막고자 외국인을 추방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용기와 기백을 믿기 때문”이라며 “적(스파르타)은 어릴 때부터 용기를 키우고자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우린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그들 못지않게 위험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민주정치의 특징인 개방성과 자유로움이 국민을 용감하게 만들고 위협에 자신 있게 맞서도록 하며, 이것이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맞서 싸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페리클레스는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사로부터 2500여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북한은 ‘창조적 저강도 도발’을 감행해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려 시도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북한 움직임에 일희일비한다면, 사회적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가볍게 말하고 움직이는 대신 국민과 민주주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감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북한 도발에 맞설 내구성은 자연스레 생긴다. 이것은 확성기 방송보다 더 강한 대북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