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추가 조사 없이 재판에 넘긴 데에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가 ‘최종 결정권자’이며, 쌍방울 자금 800만달러(약 110억원)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사실을 인정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1심 판결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향후 이 대표 재판에선 제3자 뇌물죄 성립 요건인 부정한 청탁 입증,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이 전 부지사의 진술 신빙성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12일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남북교류협력법·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을 이 대표 공범으로 보고 두 사람을 각각 특정범죄가중처벌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뇌물 공여 혐의로도 추가 기소했다.
검찰이 지난해 9월 이 대표를 2차례 소환 조사한 뒤 9개월 만에 전격 기소한 건 7일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에서 이 대표와의 연결 고리, 쌍방울이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달러와 이 대표 방북 비용 300만달러를 북한에 대납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을 통해 경기도와 쌍방울이 결탁한 불법 대북 송금의 실체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향후 이 대표 재판에선 김 전 회장의 ‘부정한 청탁’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이 대표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성립한다. 대법원 판례상 부정한 청탁은 묵시적 의사 표시로도 가능하다. 청탁 대상인 직무 행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도 없다.
검찰은 이 대표가 이 전 부지사와 공모해 김 전 회장이 청탁한 대북 사업 지원을 약속했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이 대표는 “쌍방울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에게 쌍방울의 대납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한 이 전 부지사의 진술 신빙성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이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검찰은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 ‘당연히 그쪽(이 대표)에 말씀드렸다’는 말을 들었다”, “2019년 이 대표와 2차례 통화했고 ‘저 역시도 같이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는 김 전 회장의 진술 신빙성이 인정됐고 다른 물적·인적 증거도 충분한 만큼, 이 대표 유죄 입증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이날 이 전 부지사와 방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은 ‘금융 제재 대상자인 북한 조선노동당에 전달됐음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전 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일부가 무죄로 나온 데 대해 “북한 정권의 자금원 차단이란 입법 목적에 반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위증교사·선거법 위반…연내 1심 선고 가능성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불법 대북 송금 의혹으로 추가 기소되면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더 커졌다. 이 대표는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 이번 제3자 뇌물 사건까지 총 4개 재판을 받게 된다. 이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선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에서 3개 재판을 받고 있다. 형사33부(재판장 김동현)가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과 ‘위증 교사 사건’을 별도로 심리하고 있다. 형사34부(재판장 한성진)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사건’을 맡고 있다.
여기에 ‘대북 송금 사건’이 더해져 이 대표는 총 7개 사건 재판을 함께 받게 됐다. 이로 인한 법원 출석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대장동 사건’과 공직선거법 사건으로 매주 화요일·금요일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위증 교사 사건도 월 1회가량 재판이 진행된다. 게다가 대북 송금 재판까지 열리면 이 대표는 한 주에 3∼4회 법원을 찾아야 할 수 있다.
특히 검찰이 이날 공소장을 접수한 수원지법에서 대북 송금 재판이 열린다면 서울 서초동과 경기 수원시를 오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제1야당 대표로서의 당무 수행에도 지장을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표는 그간 재판에서도 당무를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별도 협의 없이 무단 불출석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받는 재판 중에서 1심 결론이 나온 사건은 없다. 특히 관련 기록이 방대한 대장동 사건은 대장동 개발 비리와 관련한 증인신문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에 이 사건 1심에만 2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다만 위증 교사 사건과 선거법 위반 사건은 현재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로 이르면 올해 1심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다음 대선까지 3년여의 시간이 남은 걸 감안하면 이들 재판 결과는 이 대표의 정치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위증 교사 사건의 경우 개발 비리 등과 비교해 사건 분량이 적고 적용 법리가 간단해 심리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위증 교사 혐의를 받는 이 대표의 육성 녹음 파일이 존재하고, 공동 피고인 김진성씨도 위증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위증 교사 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은 일반 형사 사건으로 집행유예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피선거권을 잃는다. 형법상 위증(교사)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된다. 판결에 따라 2027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원지법에선 이 대표 배우자 김혜경씨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등 관계자의 밥값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는 내용의 사건이다. 이 사건도 쟁점이 복잡하지 않아 올해 안에 결론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