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아니면 적? 인간 정체성에 대한 회고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아마르티아 센/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3만3000원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과 불평등에 주목하며 경제학은 물론 철학,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이 시대의 지성이다. 이 책은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사람들과 시대에 대한 고찰을 깊이 있게 담아낸 회고록이다.

아마르티아 센/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3만3000원

영국의 식민지였던 1933년 인도에서 태어난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자 사상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세운 학교에서 학문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1943년 벵골 대기근과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로 이어진 힌두-이슬람교도 간 종교 분쟁을 보며 큰 충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불합리한 폭력과 죽음에 대한 유년 시절의 강렬한 경험은 그를 경제학자의 길로 이끈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인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보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일평생 연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분쟁과 갈등이 커지는 원인을 저자는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며 인간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어 재단하는 데서 찾는다. “본국, 시민권, 거주지, 언어, 직업, 종교, 정치 성향, 그 밖에도 수많은 정체성은 우리 안에서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고 그 정체성들 모두가 우리 각자를 자기 자신이 되게 해준다“(554쪽)며 ‘정체성의 다원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