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무더위엔 수박 만한 과일을 찾기가 어렵다. 시원한 수박을 세모나게 잘라 크게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가득 차는 수분과 단맛에 스트레스가 가신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먹는 흐름을 끊는 수박씨랄까. 검은 씨가 무수히 박힌 수박이라면 먹는 시간보다 뱉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이니, 씨 뱉기가 귀찮아 수박 먹기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소비자들은 의문을 가진다. 분명 한국의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왜 70년이 지난 지금도 씨 많은 수박을 먹고 있는 걸까. 씨 없는 수박은 왜 주류 수박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까.
이를 따져보기 전에 먼저 씨 없는 수박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씨 없는 수박은 ‘한국 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장춘 박사가 한국에 소개한 것은 맞지만, 최초 개발자는 아니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은 1943년 일본 교토대 기하라 히토시 박사였다. 우장춘 박사는 재일 조선인 출신의 세계적 육종학자로 기하라 박사와 친분이 있었다. 우장춘 박사는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와 1953년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하고 한국 토양에 맞는 무, 배추, 감자, 귤 등 농작물을 개발해 보급했다.
씨 없는 수박은 특정 품종이 아니다. 특별한 재배 방식을 통해 씨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수박은 22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는데, 세포 분열 단계에서 콜히친이라는 약물을 처리하면 44개 염색체를 가진 수박이 나온다. 이 수박을 다시 22개 염색체 수박과 교배하면 33개 염색체를 가진 씨앗을 얻을 수 있고, 이 씨앗을 키우면 정상적인 세포핵 분열이 이뤄지지 않는 씨 없는 수박이 탄생한다.
씨 없는 수박도 씨앗을 담을 껍질은 생긴다. 따라서 검은 씨는 없어도 흰 쭉정이 씨앗은 있다. 최근 대형마트들은 “왜 씨가 있냐”는 고객들의 항의에 ‘씨 적은 수박’이란 이름으로 씨 없는 수박을 판매하고 있다.
씨 없는 수박은 거의 대부분 하우스에서 재배한다. 그래서 균일한 품질과 당도를 유지할 수 있다. 먹기 편한데 달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씨 없는 수박을 소비자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이유는 재배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북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022년 씨 없는 수박 재배 면적은 1330ha로 전체 1만1762ha의 11.3%였다. 2010년 130ha(0.79%)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배로 늘어난 것이지만 여전히 수박 10통 중 1통만이 씨 없는 수박이다.
왜 농가들은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하지 않을까.
씨 없는 수박은 일일이 손으로 인공수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기형과실 발생 비율도 일반 수박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 없는 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높은 기온에서 잘 자라는 고기온성 작물이기도 하다. 연중 가장 더운 7월이 주 출하 시기인데, 당도 높은 일반 노지 수박과 출하 시기가 겹쳐 경쟁력이 떨어진다.
농가 입장에서는 재배하기도 까다로운데 일반 수박보다 월등히 높은 소득을 얻을 수도 없으니 굳이 씨 없는 수박을 재배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엔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재배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달고 과육이 단단한 고품질 씨 없는 수박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후 변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져 고기온성 작물인 씨 없는 수박 재배 가능 면적도 확대됐다. 변화무쌍한 기후 탓에 노지 작물의 품질과 당도를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유통시장에서 씨 없는 수박이 더 주목받게 되기도 했다.
정주형 전북농업기술원 수박시험장 연구사는 “최근 몇 년 사이 씨 없는 수박 재배 농가가 크게 늘었다. 남부뿐만 아니라 중부 쪽에서도 씨 없는 수박을 활발히 재배한다”면서 “이른 더위로 수확 시기도 점점 앞당겨질 것으로 보여 앞으로 소비자들이 고품질 씨 없는 수박을 더 일찍,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여름이면 수박 판매 경쟁을 벌이는 대형마트들에서는 최근 씨 없는 수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보통 씨 없는 수박은 일반 수박보다 1000원가량 비싸지만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 차이는 좁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종묘사·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일찍 씨 적은 블랙수박과 씨드리스그린 프라임 수박 판매를 시작했다”며 “아이가 있는 고객들 대상으로 특히 인기다. 산지 물량이 충분해 판매가도 일반 수박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예전에는 씨 없는 수박이 유전자변형농수산물(GMO)이라는 오해가 있어 소비가 부진한 측면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인식이 개선돼 선호도가 높아졌다”면서 “다음 주부터 ‘씨가 적어 먹기 편한 수박’ 판매를 시작해 장마철부터 비중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