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에 있지만 ‘없었던’ 유령 같은 중환자실 그 남자…진실은? [강승우의 땀터뷰]

‘땀터뷰’는 우리 동네 소시민들이 흘리는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그들 일상 속으로 들어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입니다. 모두 공감하는 재미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언제나 푸근하게 볼 수 있는 옆집 아저씨, 단골가게 이모 같은 사람들이 사연의 주인공들입니다. 주인공이 되고픈 분들은 주저 말고 연락주세요. 고민은 기사만 늦출 뿐입니다. [편집자주]

 

◆땀터뷰 들어가기 전…오늘도 프롤로그

 

이번 땀터뷰는 앞서 출고가 됐던 땀터뷰와는 내용면이나 분위기면에서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께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그럼에도 왜 땀터뷰 코너를 택했냐 물으시면 이 사연은 딱딱하게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아서, 이 코너를 통하면 왠지 더 잘 전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사실 이 내용은 지난 3월에 제가 쓴 ‘한국에 살고 있었지만 한국에 없었던 어느 50대’ 기사의 후속편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죠?

 

저도 처음에는 황당하고 의아했습니다. 제가 쓴 기사를 다 읽어보면 장담컨대 독자들도 저처럼 황당함을 느낄 겁니다.

 

A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공원. 독자 제공

[강승우의 땀터뷰]⓷한국에 있지만 ’없었던‘ 유령 같은 중환자실의 그 남자…진실은?

 

이 사건의 발단은 올해 1월1일 새해 첫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후 1시쯤 경남 창원소방본부에 다급한 신고 전화 한 통이 옵니다. “여보세요? 119죠? 지금 00공원인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창원시 진해구의 한 공원에 산책 나온 주민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50대 A씨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내용입니다.

 

A씨는 창원 경상국립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한 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지요.

 

그런데 병원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됐습니다. 두 달 동안 치료하며 쌓인 A씨의 병원비가 2억원에 가까웠는데 이를 받을 길이 없어서였죠.

 

응급실에 왔을 때부터 의식을 잃었던 A씨. 병원 측은 가족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질 않았습니다.

 

결국 병원은 병원비 청구를 위해 A씨 인적사항을 토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치료비를 청구했습니다.

 

그런데 공단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A씨가 ’해외 출국자‘여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행법상 우리나라 국민이 석 달 이상 해외에 체류해 있으면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됩니다.

 

병원은 창원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A씨 입국 관련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데 또 황당한 회신을 받게 됩니다.

 

2019년 4월 한국 국적의 A씨가 미국으로 출국한 기록은 있는데, 그 뒤로 한국에 입국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A씨는 한국에 살고 있지만 공식적인 서류상으로는 한국에 있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였던 겁니다.

 

병원은 곤란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A씨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후 법무부가 A씨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지난 3월에 썼던 제 기사의 내용입니다.

 

사진=뉴시스

◆유령 같은 남자의 진실…알고 나니 더 황당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야 저는 유령 같았던 A씨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그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실 진실을 알고 나니 더욱 황당하고 미스터리할 뿐입니다.

 

A씨가 실제 미국을 오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A씨 지인으로 추정되는 제3의 인물 B씨가 A씨 여권을 가지고 2019년 4월 미국으로 출국했던 겁니다.

 

그러다 B씨가 입국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제대로 입국 기록이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의심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B씨뿐만 아니라 여권 실제 주인인 A씨도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우리나라와 미국을 오갔던 것이어서 출입국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죠.

 

더 의심이 드는 정황도 있습니다.

 

A씨도 과거에는 가정을 꾸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부인과 헤어지고 아들은 부인이, 중증장애인인 딸은 A씨가 데리고 살았습니다.

 

별도 근로 활동을 하지 않았던 A씨는 딸이 받는 정부지원금 등으로 근근이 생활해 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 A씨가 2017년 4월과 2018년 9월에도 미국으로 출국해 일주일 또는 한 달 넘게 지내다 우리나라로 입국한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짜 A씨가 미국을 오갔는지, 이때도 B씨가 A씨 여권을 가지고 출국한 것은 아닌지 하는 기자로서 합리적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이니깐요.

 

하지만 이제는 그 이상 취재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난 4월 중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씨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수억원에 달하던 병원비는 어떻게 됐냐구요?

 

사진=연합뉴스

A씨가 숨지기 전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A씨가 의료보험 적용이 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법무부가 뒤늦게 A씨 출입국 기록을 제대로 정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생전에 이 기록이 정정됐으면 아마 A씨 생활이 약간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A씨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원 원룸에 살고 있었는데, 1년 넘게 월세가 밀려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선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처방전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A씨가 쓰러지기 한 달 전 혈압약 일주일치 처방을 받았지만 약은 타지 않았습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면 절반 수준인 약값이지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면 약값이 두 배가 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이나 친척들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여서 A씨 시신은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될 예정입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배웅해주는 것이어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