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수업을 듣고 잔디밭에서 앉아 낭만을 즐기는 것이 꿈인 청년이 있었다. 가난 탓에 낮엔 일하고 밤에 야간대학을 다니던 이 청년은 기회를 찾아 미국행을 선택했다. 고생과 시련,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로 결국 연매출 1억달러(약 1400억원)의 큰 사업체를 일궜다. 이제는 젊었을 적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을 도울 수 있게 됐음을 기뻐한다.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용기(78) A&E크리스천재단 이사장이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지난 13일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봤다.
이 이사장은 생계를 위해 에어컨·냉장고 등 수리기술을 배웠다. 한양대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2부(야간)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다. 1968년 냉동기술자 베트남 파견에 지원했다. 3년 계약이 끝날 즈음 한국 대신 미국으로 향했다. 이 이사장은 “흙수저였던 내가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야 한다는 각오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그의 자랑은 사업 성공이 아니다. 이 이사장은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았나’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성공”이라며 “은퇴할 때 고객들이 서운해하는 걸 보면 나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사회 환원에 힘쓰고 있다. 주로 청년들을 지원한다. 2021년 A&E크리스천재단을 만들었다. 자녀들이 베푸는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앤드루)과 딸(엘리자베스)의 이름을 땄다. 재단은 어려운 선교사와 신학생을 돕는다. 그는 LA코리아타운 라이온스클럽 장학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 이사장은 3년째 매년 한양대 학생 4명에게 약 2주간의 미국 탐방을 지원하고 있다. 전액 사비다. 프로그램 이름은 ‘마이 퍼스트 패스포트(My First Passport)’로, 경제적 문제로 처음 여권을 만드는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 이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이 상대적 빈곤을 많이 느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급해하고 서두른다”며 “그렇다 보니 좌절하고 부모나 가정을 원망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원을 통해) 이들에게 불공평함에 눈 돌리지 말고 ‘너희들도 잘할 수 있다, 내 갈 길은 내가 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한양대는 이 이사장에게 18일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이 이사장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노력하면 나도 명예박사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런 전체 학생들의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