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영화 속 주인공들

‘암살’의 남자현·‘밀정’의 김상옥 등 묻혀
무후선열 제단엔 박열·유관순 등 위패 봉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국립현충원을 찾는 발길도 많아진다. 국립현충원의 역사는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많은 전사자가 생겨났고, 이들을 모실 묘지의 조성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1953년 현재의 동작동 묘지를 부지로 선정하였고, 1955년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되었다. 1965년에는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하였으며, 1996년에는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분리되었다. 그동안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대전현충원은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여 주관 부처가 달랐는데, 올해 7월부터는 서울현충원도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게 된다. 지난 6월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은 ‘국방부 소속’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마지막 현충일 행사가 되었다.

서울현충원에는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애국지사 묘역, 무후선열(無後先烈) 제단(祭壇), 임시정부요인 묘역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대형 태극기가 양쪽에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독립유공자 묘역이 이곳에 조성되어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최근 영화 속 실제 모델이 되었던 인물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것도 주목된다.



2015년 127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배우 전지현)의 실존 인물은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南慈賢:1872~1933)이었다. 남자현 의사는 46세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령성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주해 서로군정서에 가입, 군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사코의 암살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는 등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2016년 7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밀정’의 앞부분에는 일경에 맞서 단신으로 쌍권총을 쏘며 총격전을 벌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김장옥(배우 박희순)이라 하였지만,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1889~1923)의 실제 모습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후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자, 신출귀몰한 탈출을 해나갔다. 마지막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는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최후까지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형사부장 등을 사살하였다. 총알이 떨어지자 마지막 1발을 스스로 머리에 쏘고 현재의 대학로 부근에서 순국하였다. ‘밀정’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조선총독부로 들어가는 학생이 등장하는데, 이는 1921년 조선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金益相:1895~1925) 의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외에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박열’의 실존 인물 박열(朴洌:1902~1974)은 무후선열 제단에 모셔져 있다. 박열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무후선열 제단’은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만 남아 있는 선열을 모신 제단으로, 3층의 계단에 134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제단의 앞쪽에 ‘민족의 얼’ 글씨를 새긴 석비와 장엄한 조형물이 있다. 무후선열 제단에는 2019년에 개봉한 ‘항거’의 주인공 유관순(柳寬順:1902~1920) 열사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국립현충원을 찾아 격동의 시기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