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월 강원도 속초공항을 떠나 김포로 향하던 여객기가 홍천 상공에서 납치당한다. 여객기에 탄 납치범 김상태(당시 23세)는 월북을 원했다. 그는 사제 폭탄으로 위협하면서 휴전선을 넘으려 했으나 승무원들이 몸을 던져 참사를 막았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하이재킹’(사진)은 대한항공 여객기 납북 미수 사건으로 불리는 이 실화를 소재로 했다.
사건 발생 당일 기장 규식(성동일)과 부기장 태인(하정우)은 속초공항에서 승객을 태우고 이륙한다. 태인은 공군 전투기 조종사 시절 대한항공 YS-11기의 납북을 저지하지 못한 과거를 안고 있다.
낯선 비행에 들떠 있던 승객들은 용대(여진구)가 사제폭탄을 꺼내 들자 공포로 얼어붙는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 납치극이 벌어지는 1시간여를 실시간으로 따라간다.
‘하이재킹’은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덕분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사건임에도 긴박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제작진은 공중 납치극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영화의 배경인 F-27 여객기를 통으로 제작했다. 1955년 생산된 F-27은 총 5대가 국내에 도입돼 주로 국내선에 쓰였다. 제작진은 현재 단종된 F-27의 바닥부터 천장, 의자의 천까지 일일이 만들었다. 이 비행기 세트를 짐벌 위에 얹어 조정해 세밀한 움직임을 표현했다. 이를 통해 폭탄이 터질 때 비행기의 흔들림, 승객의 혼란, 순간 새어 들어오는 빛을 포착해 현장감을 살렸다.
공중 납치극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F-27 여객기와 F-5 전투기도 20회차 이상 시뮬레이션했다. 영화에는 태인이 F-27 여객기를 360도로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전투기라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이 움직임을 실제 여객기로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여러 차례 가상으로 시험했다.
기내에 갇힌 60명 가까운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 과정 역시 영화의 사실감을 더했다. 승객을 연기한 배우들은 독립영화,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영화 개봉 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하정우는 “모두 기성 배우들인데도 40번을 만나서 리딩(대본 읽기)했다”며 “촬영 기간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1시간가량 리허설을 하고 촬영한 힘이 캐릭터마다 표현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만 영화가 부기장의 희생과 사명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캐릭터의 입체감은 떨어진다. 승객들의 사연을 부각하지 않아 영화의 속도감과 집중력은 좋지만, 반대급부로 구조되는 순간 감정이입할 여지도 줄어든다. 오히려 일부 승객의 이기적인 모습에 씁쓸함이 들 때가 있다. 일부 대사가 뭉개져 잘 들리지 않는 것도 약점이다.
납치범 용대를 맡은 여진구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분노를 담은 큰 눈을 번득일 때면 스크린 너머로 기운이 뻗어 나오는 듯하다. 남북 분단이 빚은 비극이라는 납치범의 과거도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하정우는 “여진구 배우가 액션·감정신을 찍을 때 눈이 돌아가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을 때가 있었다”며 “이 배우가 매 연기를 전력질주하고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하이재킹’은 김성한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김 감독은 “신파 같은 눈물을 염두에 두기보다 실제 사건을 충실히 담으려 했다”며 “영화를 본 후 먹먹함이 있었으면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