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물을 놓고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1991년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로부터 ‘물 부족 국가’로 지정된 한국은 2003년 이후 줄곧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돼 왔다. 물 스트레스 국가는 국민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1000~1700㎥ 미만인 나라를 일컫는다. 특정 기간 강우가 집중되고 지역마다 강수량이 천차만별이다.
기후위기는 만성적인 물 부족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반복되고 지역별로 집중호우, 가뭄 피해가 동시에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2022년 여름 서울과 강원 등 중부권은 물난리가 났으나 부산, 경남지역은 극심한 가뭄과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전남지역은 그해 11월 이후 제한급수제까지 시행됐다.
취수원 등 지자체 간 먹는 물 분쟁은 이러한 복합 요인이 겹친 결과다. 취수원이 특정지역에 몰려 있다 보니 먹는 물을 둘러싼 지자체 갈등이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취·정수장 시설 개량과 지방상수도 경제성·효율성 제고뿐 아니라 깨끗한 수질의 상수원 확보를 위한 상수원보호구역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낙동강 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부산시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고’ 이후 1998년부터 2020년까지 약 22조원을 투입해 하수처리장·하수관로·축산폐수·비점오염원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낙동강 수질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고 대체 상수원 확보도 여전히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부산시는 올해 4월 경남 의령군과 ‘낙동강유역 맑은 물 공급체계 구축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낙동강 맑은 물 공급사업은 2030년까지 3조9000억원을 들여 낙동강 수질을 개선하고, 1억7613억원을 투입해 대체 상수원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남 합천군 황강 하류 19만t과 창녕·의령군 강변여과수 71만t 등 하루 90만t의 맑은 물을 취수해 부산과 동부경남에 각각 42만t과 48만t을 배분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계획은 지난해 3월 ‘낙동강수계 물 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환경부는 창녕·합천·의령군에 매년 취수량과 연동된 지원금 140억원을 분배하고, 부산시도 자체적으로 상생지원금을 조성해 50억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시는 아울러 2028년까지 먹거리지원센터를 건립하고, 200억원 규모의 농산물을 구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의령지역 친환경쌀 등 농산물 급식자재 구매지원 및 농산물 특판전을 개최하고, 해당 지역 청년들이 부산지역 대학에 진학할 경우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천 내 파크골프장과 친수공간시설을 설치하고, 취수지역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등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의령군은 부산시와 상생협약 체결 보름 만에 해지를 선언했다. 주민들 반대가 주된 이유다. 의령 주민들은 강변여과수를 부산에 공급할 경우 농업용수 부족으로 농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취수원 오염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의령군이 별다른 의견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부산시와 협약을 체결한 것도 주민들 반발을 키운 요인이다.
◆“상수원 보전해야” vs “우리가 왜 희생?”
대구시와 경북 구미시는 취수원 문제로 갈등을 벌이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10월 구미공단에서 배출하는 폐수로 오염된 낙동강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대구시민들이 30년간 고통을 겪었다면서 시민 건강권 보호를 위해 구미공단에 유해물질 배출업체가 들어올 수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발표했다. 대구시는 “구미시는 대구·경북(TK)의 화합을 저해하고 분열을 획책하려는 볼썽사나운 욕심을 버리고 TK 백년미래에 걸림돌이 되는 행동들을 거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미시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맞서고 있다. 구미시는 “구미산단 기업들은 지난해 298억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대구시가 지역기업에 불법적 압박 행위를 가하는 것은 대구·경북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강원 원주시와 횡성군도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둘러싸고 20년 넘게 갈등을 빚고 있다. 횡성군은 원주 취수장 상류지점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지역개발과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원주시는 기후변화로 수위가 낮아지는 추세인 데다 2035년부터 물이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에 난색을 표한다. 원주시 관계자는 “상수원보호구역은 일단 해제하면 다시 지정하기 어렵다”며 “먹는 물보다 중요한 것이 있나. 개발 논리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상수원보호구역인 강원 화천군 화천댐을 두고도 지자체 간 갈등이 첨예하다. 정부가 2035년까지 경기 용인시 일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여기에 화천댐 물을 공급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 과정에서 강원도와 화천군에서 겪을 수 있는 물 부족에 대한 대책은 제시되지 않아 지역사회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화천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씨는 “지역에서 쓸 물도 부족한데 용인에까지 물을 보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장보다 먹는 물, 농업용수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는 물을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로 국민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정부가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물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기재 부산대 교수(생명과학)는 “지자체들이 행정구역 내 물을 자신들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먹는 물 문제는 농업 및 산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전력 공급처럼 국가가 개입해 중재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