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나 정부나 다 똑같다”… ‘고래 싸움’에 ‘환자등’ 터진다 [의사 집단휴진]

전국 곳곳서 환자 불편 속출
강서·서초 48곳 중 7곳만 종일 휴진
어르신 등 휴진 모르고 왔다 헛걸음
“대청소로 쉽니다” 황당사유 빈축도
지역커뮤니티선 “휴진 병원 보이콧”

대형병원 대부분은 외래 정상진료
지방 상급병원도 의료 공백은 없어

“동네 병원(의원)까지 문을 닫으면 어떡하냐.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하루 휴진’ 안내문 18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전 파악된 (전국 개원의) 휴진 신고율은 약 4%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재문 기자

18일 아픈 딸 손을 잡고 서울 강서구의 한 이비인후과 의원을 찾은 60대 A씨는 동네 병·의원 일부가 집단 휴진 중이라는 기자의 설명에 “그런 법이 어딨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집 앞 의원이 문을 닫아 다른 의원을 찾았다는 그는 휴진 팻말을 보고 “환자를 볼모 삼은 의사나 이 사태를 못 막은 정부나 다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스크를 쓰고 기침을 연신 내뱉던 딸과 아버지는 문이 닫힌 의원 앞에서 다른 의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의대 정원 확대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휴진에 나선 이날 휴진에 동참한 병·의원은 소수에 그쳤으나 파업 여파로 적지 않은 환자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휴진에 참여한 동네 의원 명단을 공유하고 불매운동까지 거론하면서 집단휴진 사태가 의사와 환자 간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세계일보가 이날 서울 강서구와 서초구의 병·의원 48곳의 휴진 여부를 확인한 결과 종일 휴진에 나선 병·의원은 7곳이었다. 화곡중앙시장 앞 의원 15곳 중 13곳은 정상 운영됐고, 2곳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하루 휴진을 안내 중이었다. 강서구 마곡동의 한 주상복합단지 의원 8곳 중에선 3곳이 ‘하루 휴진’ 팻말을 내걸었다. 주변 약국의 한 약사는 “오늘 단지에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다. 뉴스를 보고 손님들이 덜 오셨나 싶다”며 “휴무라고 안내했던 병원들도 오전에는 예약 손님 위주로 진료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오후에 문을 닫은 한 의원 관계자는 “오후 2시부터 열리는 의사 총궐기대회에 참여해 부득이하게 휴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방도 상황은 비슷했다.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옆 15층 건물에 입주한 10여개 병·의원 중 1곳을 제외한 나머지 병·의원은 이날 정상 진료를 했다. 울산의 경우 사전 휴진신고율이 10% 미만이었고, 실제 휴진율도 이보다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집단휴진에 동참한 병·의원을 찾은 환자들은 불편을 피할 수 없었다. 서초구에 있는 한 이비인후과 의원 앞에서 만난 장모(67)씨는 “오후 진료 없습니다”란 안내문이 붙은 채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당혹스러워했다. 장씨는 “인후통이 심해져 항상 오던 병원에 왔는데 문이 닫혀있을 줄은 몰랐다”며 “병원이 닫혔는지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어떻게 확인하냐”고 토로했다.

진료 기다리는 환자들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의사들이 집단 휴진에 나선 18일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외래센터 대기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지친 모습으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대병원 교수 270명 중 이날 휴진 의사를 밝힌 인원은 18명이다.  부산=뉴스1

휴진에 참여한 병·의원들은 휴진 사유를 제대로 써놓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주민들은 이유를 명시하지 않은 휴진도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보는 분위기다.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선 주민들이 이날 문을 닫은 병·의원 목록을 공유하며 집단휴진 참여 여부를 캐내기도 했다. 서울의 모 지역 커뮤니티에선 ‘학회나 기타 이유로 하필 오늘 휴진하는 병원들이 많다. 별다른 해명이 없다면 앞으로 해당 병원을 보이콧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커뮤니티에는 서울 일부 병·의원들이 청소 등을 이유로 휴진을 공지한 소식이 전해지며 빈축을 사기도 했고, ‘휴진하는 병원들은 환자들을 위해 앞으로도 이용하지 말자’는 의견도 올라왔다.

의협이 주도하는 집단휴진에 개별 의대 교수들도 참여하기로 했지만 대형병원 대부분에서 정상 진료가 진행되며 큰 혼란은 나타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은 9시가 되기 전부터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로 북적였다. 병원을 찾은 파킨슨 환자는 “진료 일정이 밀리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삼성서울병원에서 개인 사유로 휴진한 교수는 5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성모병원은 평소보다 5∼10%가량 외래진료가 줄었고, 수술과 입원은 평소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개인 사유로 휴진한 교수는 10명 내외로 집단휴진에 참여하기 위해 휴진한 교수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가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한 지 이틀째인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아산병원 외래진료는 전주와 비슷한 1만2000건 정도였고, 수술 건수는 76건으로 1주 전인 11일(149건)의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예정된 수술 일정을 당겨서 진행하는 등 휴진에 앞서 교수들이 일정을 일부 조정했다고 한다.

지방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의료 공백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부산대병원의 경우 재직 교수 278명 중 31명(11.2%)이, 동아대병원은 170명 중 한 명도 휴진하지 않았다. 광주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교수들은 연가를 내는 대신 연구실에서 연구활동을 하거나 당직을 서는 것으로 진료를 대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대병원은 263명의 전문의 중 46명(17.5%)이 휴진에 동참했으나, 간호사들이 사전에 외래 진료·수술 일정 등을 조율해 큰 혼란은 없었다. 그러나 당일 병원을 찾은 일부 환자들은 외래과가 휴진하면서 발길을 돌리거나 항의하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충북대병원의 경우 전문의 165명 중 48명(29.1%)이 휴진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