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신기술 퍼즐 맞추기

HBM 고가탓 현장서 외면당해
챗GPT 등장하며 새롭게 조명
GPU 등 현 AI 핵심기술처럼
작은 조각이 혁신의 길 열 수도

2023년, 챗GPT 열풍이 시작되자 미국 엔비디아의 실적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2023년 3월 주당 265달러에서, 2024년 3월22일 914달러로 3.45배로 폭등하였다. 너무나 당연하다. 챗GPT와 같은 매력적인 인공지능(AI)을 구동하려면 엔비디아의 반도체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엔비디아의 어마어마한 실적에 큰 수혜를 받는 한국 기업이 있다. 바로 SK하이닉스이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가 원하는 HBM이라는 메모리를 생산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불황과 높은 재고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회사가 단 1년 만에 완전히 변해버렸다. 비슷한 기간 동안 SK하이닉스 역시 주가가 1.9배로 늘었다.

하지만 HBM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HBM은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적층하여 만든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가 거주하는 집이라 할 수 있다. 일반 메모리가 개인주택이라면, HBM은 아파트에 가까운 물건이다.

정인성 작가

하지만 일반 아파트와 달리 모든 세대가 1층으로 가는 직통 엘리베이터를 가진 독특한 아파트이다. 모든 세대가 전용 엘리베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모든 세대가 원할 때 즉시 1층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파트를 짓는다면 누구도 분양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출퇴근시간에만 잠시 붐빌 뿐인데 대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엘리베이터를 각 세대가 보유해야 한다니, 너무 낭비가 심하다. 이런 이유로 HBM은 2013년 업계 표준 중 하나로 등록되었음에도 크게 유행하지 못했다. 당시의 연산 반도체들은 그 정도로 빠른 메모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용량이야 다다익선이지만, 추가 성능개선을 고려해보아도 용량당 가격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게임 분야나 거대 시뮬레이션 등 수요자가 적고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분야만이 이런 메모리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변했다. AI의 등장, 둔화된 무어의 법칙 두 가지가 합쳐져 HBM이 대유행하게 된 것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챗GPT가 등장하게 되자 인공지능이 반도체들에 요구하는 바가 크게 변화하게 된다. 현재 유행하는 AI들은 2012년에 큰 성공을 거둔 뒤, 꾸준히 여러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중 챗GPT는 AI의 크기를 압도적으로 키워보자는 접근을 취하였다. 챗GPT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GPT-3는 2012년에 출시된 AI인 이미지넷의 2900배가 넘는 크기였다. 수행하려는 프로그램이 거대해지면 메모리 용량도 커져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도 빨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무어의 법칙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2년마다 2배씩 증가하는 밀도 덕에, 용량도 빠르게 늘었고 소자의 성능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무어의 법칙은 개인주택의 크기도 줄여주었고, 사람들의 걸음 속도도 빠르게 해주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이 둔화하니 여기에 기댈 수가 없는데, 10년 만에 3000배 가까이 거대하지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회사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구동해야만 하는 프로그램이 나타난 것이다. 덕분에 세대마다 엘리베이터가 달린 독특한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리게 된 것이다.

HBM은 우리가 신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발굴해야 하는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신기술은 거대한 퍼즐게임과도 같은 것이다. 현재의 AI를 이루는 HBM, GPU, AI 학습 이론 등의 기술은 수십년 전부터 학계와 현장의 연구원들 헌신으로 개발되고 있었다. 이런 조각들이 한 곳에 모여서 순서에 맞게 조립되어야 우리 앞에 비로소 AI라는 거대한 신기술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미래 기술을 선도하고 싶다면, 오래된 작은 기술들 역시 한 번 다시 살펴보고, 이러한 기술들이 미래 혁신 후보 기술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안에 미래 기술혁신의 힌트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정인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