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방북’ 푸틴 홀로 맞은 김정은… 두 번 포옹 뒤 ‘아우루스 밀담’ [북·러 정상회담]

푸틴 방북 스케치

사하共 일정 지연… 새벽 2시30분 도착
당초 1박2일서 당일치기… 환영식 축소

차량 동반 탑승한 뒤 금수산궁전 이동
“북·러 정상, 쌓인 회포 풀며 의중 나눠”
정오에 환영행사… 北주민들 꽃 흔들어
회담 뒤 ‘아우루스’ 번갈아 운전하기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새벽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깔린 레드카펫 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용기인 일류신(IL)-96에서 내리는 모습을 주시했다. 전용기 계단을 내려온 푸틴 대통령은 서둘러 레드카펫 위를 걸어와 김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포옹했다. 이윽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한 여성이 푸틴 대통령에게 붉은색 꽃다발을 전달하며 24년 만의 방북 환영 인사를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19일 새벽 북한 평양의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영접 나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짧은 만남이지만 두 정상은 두 번 포옹했고, 서로 손을 잡고 대화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직후 금수산영빈관 숙소로 향하는 러시아산 최고급 승용차 아우루스에는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탑승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평양은 24년만의 방북 환영을 위해 극진한 의전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푸틴 대통령이 예정시간보다 5시간 이상 늦게 도착하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러시아 매체는 푸틴 대통령은 평양에 앞서 방문했던 사하공화국(야쿠티야)에서 18일(현지시간) 밤 10시쯤 평양으로 출발해 이날 새벽 2시 30분쯤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매체 타스통신은 앞서 푸틴 대통령 환영 준비를 마친 평양 풍경을 스케치한 영상과 기사들을 내보내며 대대적인 환영 준비 분위기를 전했다. 평양에서 최고 높은 건물이자 미완의 건축물인 류경호텔은 ‘환영 뿌찐(푸틴)’이란 대형 글씨가 조명으로 부각했고, 건물마다 백·청·적색 대형 러시아 국기를 내걸고 가로등에 푸틴의 초상화와 국기가 펄럭이는 보습을 전했다.

 

북한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19일 오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전용기에서 내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환영을 받고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과거 외국 정상의 평양 방문에서 보였던 것처럼 평양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돼 환영인파로 나왔을 법하지만 늦은 평양 도착 탓인지 평양 시민은 보이지 않았다. 의전 총책임자로 올라선 것으로 알려진 현송월 당 부부장 모습만 조선중앙TV에 포착됐다. 당, 정, 군 주요 간부도 보이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북·러 정상이 이동길에 “황홀한 야경으로 아름다운 평양의 거리를 누비면서 그동안 쌓인 깊은 회포를 풀며 이번 상봉을 기화로 조로(북·러)관계를 두 나라 인민의 공통된 지향과 의지대로 보다 확실하게 승화시키실 의중을 나누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푸틴 대통령의 ‘지각 도착’ 사실을 보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동신문은 러시아 국기 삼색을 활용한 화려한 1면 편집과 세로 제목 등 기존 밋밋한 편집 틀을 깨는 편집 디자인을 거의 최초로 선보이며 각별히 공을 들인 모습이 엿보였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와 영접했다는 점에서는 예우를 다 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뒷짐 지고 푸틴 기다리는 김정은… 러 매체 “최고의 신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새벽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북한군이 도열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도착을 영접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 매체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사하공화국(야쿠티야)에서 18일 10시쯤 평양으로 출발해 19일 새벽 2시 30분쯤 도착했다. 평양=AP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아우루스 한 대와 차(茶) 세트, 한 해군 장성 단검을 선물했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에도 김 위원장에게 이 자동차를 선물한 바 있다.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아우루스는 러시아 최초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외국 정상의 의전용 차량 등으로 쓰인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두 번째로 선물한 아우루스 번호판에는 7 27 1953이 적혀있는데, 이는 6·25전쟁 정전 협정을 맺은 1953년 7월 23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금수산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서 이 아우루스를 번갈아 운전했다. 외신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푸틴 대통령이 먼저 김 위원장을 옆에 태운 채 운전대를 잡은 뒤 영빈관 인근을 돌았다. 이후 두 정상은 산책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고, 산책을 마친 뒤에는 김 위원장이 운전대를 잡고, 푸틴 대통령이 그 옆에 앉은 채 숙소로 돌아갔다.

 

김일성 광장 메운 北주민들 “뿌찐 환영” 북한 주민들이 1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 사진과 북한 국기인 인공기 그리고 꽃다발을 들고 푸틴 대통령의 24년 만의 평양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평양=AFP연합뉴스

북한은 19일 정오에 김일성 광장에서 별도 공식 환영행사를 진행했다. 김 위원장이 먼저 환영식장에서 들어와 대기했다. 푸틴 대통령이 차를 타고 입장한 뒤 양국 정상은 다시 한 번 반갑게 인사했다. 양국 국가 연주, 예포 발사, 의장대 사열 등 공식 환영식을 마무리한 양국 정상은 함께 무개차에 탑승해 회담장인 금수산영빈관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양국 정상이 탄 차량이 지나가는 데 맞춰 “조로(북러)친선”, “푸틴환영”, “친선단결” 등을 외치며 환영했다. 시민 대다수는 러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빨간색, 흰색 옷을 입고 푸틴 대통령을 환영했으며 확대정상회담이 열린 금수산 영빈관 내 회담장 테이블에도 러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의 꽃이 장식됐다.

 

이날 환영식에는 최선희 외무상,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경택 인민군 총정치국장, 리일환 당 비서와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 등이 참석했고 양 정상은 각자 자기 수행 인원을 서로에게 한 명씩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