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 경기 이천시청 대회의실. 김경희 이천시장의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번졌다. ‘쌀’과 ‘도자’의 고장인 이천이 미래 먹거리 발굴에 박차를 가한 지 2년 만에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분야에서 도약의 기반을 닦은 덕분이다. 김 시장은 이날 이상일 용인시장과 ‘반도체산업 기반 공동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교환했다. 지난해 12월 두 도시가 반도체 인재 양성과 기술보호를 위한 협약을 맺은 지 반년 만에 교통 인프라 확충까지 영역을 넓힌 셈이다.
이번 협약에는 세계적 반도체 클러스터와 최첨단 국가산업단지가 예정된 용인시와 SK하이닉스의 본사가 둥지를 튼 이천시가 주요 시설을 잇는 도로망을 구축하고, 중앙정부와 경기도를 상대로 다양한 제안을 함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천시 입장에선 반도체 전초기지의 청사진을 구체화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마련 등 정책과제의 터전을 마련한 자리였다. 지역 안팎에선 협약의 영향으로 반도체 훈풍을 만난 용인의 개발 여력이 이웃 이천으로 확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시장은 “반도체 물류 이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선 교통망 확충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대기업이 위치한 도시 간 도로망 연결을 통해 ‘반도체 메가시티’ 조성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우선 도로망 연결로 두 도시의 밀접도를 높이기로 했다. 국지도 84호선 가운데 용인 이동∼원삼∼이천 대월 구간을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2026∼2030년)에 반영하는 게 첫걸음이다. 이어 지방도 325호선 용인 백암∼이천 호법 구간 연장과 지방도 318호선 용인 백암∼이천 설성이 제4차 경기도 도로건설계획(2026∼2030년)에 포함되도록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두 도시 간 반도체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복안이다. 용인시는 현재 원삼면의 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L자형 반도체 벨트와 반도체 배후도시 조성, 용인플랫폼시티 구현, 교통망 확충 등의 계획을 차례대로 실현에 옮기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동·남사읍 일원에 300조원을 투자하는 세계 최대 규모 시스템반도체 산단 조성까지 구체화하면 2030년 산단의 첫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 이천시 역시 초격차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춰 차세대 기술인력 육성과 반도체 중소기업 기반 마련을 위한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처럼 비슷한 배경을 갖춘 두 도시는 향후 밀접하게 보조를 맞춰 나갈 예정이다. 과거 관내 반도체 기업들의 산업 사이클 후퇴로 고전했던 경험을 살려 외풍에 영향받지 않는 거대한 협력모델을 구축한다는 철학까지 공유했다. 특히 이천시는 반도체 생태계 확장을 위한 차별화된 기반을 갖췄다는 평가를 듣는다. 우수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과 ASML, TEL, AMAT, 램리서치 등 해외 반도체 기업의 한국사무소가 있다.
국가첨단전략산단 공모에 나섰던 부발읍·대월면 일원 공업지역 약 127만㎡(38만평)가 큰 그림의 기반이다. 향후 반도체 벨트 확대에 따라 연구개발(R&D) 예산과 전력·용수 등 인프라 등이 확보되면 관련 기업 투자와 유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시는 인근 대월2일반산단에도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고, 지식산업센터 등을 활용한 연구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조성된 단지는 하이닉스의 이천 공장과 용인의 반도체 생산시설과 협업하는 소부장 업체들의 근거지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시는 반도체산업의 초급 인력부터 고급 인력까지 지역에서 키워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현재 지역 학교, 반도체 기업체 등과 협업해 세라믹기술연구원(이천분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반도체산업협회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천 제일고등학교 등과 협약을 맺어 반도체 계약학과도 개설했다.
◆사통팔달 입지… 첨단산업 도시 목표
이천시는 인구 23만여명, 연 예산 1조3400억원 규모(4월30일 기준)의 경기 남부 도농 복합도시이다. 높은 주택 보급률(111%)을 나타내며 관내에 1200여개 기업, 4만60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 대기업은 9개(2만2000여명), 중견기업은 26개(4200여명)이다.
꾸준히 증가하는 청년 인구와 사통팔달의 교통망은 이천이 갖춘 또 다른 강점이다. 남북을 가르는 중부고속도로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영동고속도로가 교차하고 서울에서 충주를 잇는 국도 3호선과 수원에서 여주를 잇는 국도 42호선이 있어 교통요지로 꼽힌다. 최근에는 경강선과 KTX 중부내륙선이 개통하고 직행 좌석버스들이 잇달아 노선을 확충하고 있다.
이는 산업의 집적화에 유리하고, 반도체 초기 시장 수요 창출 효과를 극대화한다. 향후 인허가 신속처리 특례와 각종 부담금 감면 등 지원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의 기업도시가 된다.
이처럼 ‘기업하기 좋은 도시’ 이천의 강점은 미래 지향적 도시 계획 수립과 산업 집적화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 기업 투자 관련 각종 규제 개선 노력, 자금 지원을 포함한 기업 지원 시책 등과 어우러져 힘을 얻고 있다.
앞서 김 시장은 민선 8기 공약으로 반도체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여러 방안을 내세운 바 있다. 첨단산업벨트의 거점을 구축하고, 대월산업단지를 친환경 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한다는 약속이다. 부발역세권과 하이닉스 배후도시를 연결해 반도체 기반의 미래첨단산업 도시로 키우고 여기에 미래도시 체험관과 차세대 반도체 연구단지, 첨단 인재 양성을 위한 정보기술(IT) 대학 등을 임기 안에 유치해 4차 산업을 선도하는 미래형 도시로 키운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에 시는 2022년 10월 직제개편을 거쳐 반도체전담팀을 신설했고 반도체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 제정, 반도체 기업협의체 구성, 투자유치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에 나섰다. 지난해 11월에는 첨단미래도시추진단이 설립됐고, 올해 4월에는 신산업 발굴 및 육성전략 수립 용역 등에 착수했다.
김경희 시장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첨단산업 도시가 되도록 정부, 기관 등 어디든 찾아갈 준비가 돼 있다”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천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최고의 반도체 도시로 자리매김하도록 공직자들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희 이천시장 “반도체 육성 위한 규제 풀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 것”
“SK하이닉스 외에도 이천에는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관련 기업이 30곳 넘게 있습니다.”
김경희(사진) 경기 이천시장은 민선 8기 2주년을 앞둔 20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도시 발전의 큰 그림을 제시했다. 김 시장은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며 “교육부 허가를 받아 이천 제일고등학교에서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등 인재 육성으로 산업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지난해 12월 두원공과대학 등과 반도체 맞춤형 전문인재 양성을 위한 협약을 교환했고, 올해 4월에는 한국폴리텍대학과 이천 반도체 교육센터 유치를 위한 상생협력 협약을 맺었다.
김 시장은 인터뷰 도중 정부의 반도체 첨단 산단 공모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신 일을 회상했다. 그는 “정부의 반도체 특화단지 공모에 공을 들였지만, 대도시들에 밀렸다”면서 “그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를 알게 됐고 시 자문위원으로 영입해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김 시장에게 최근 용인시와 맺은 발전협약은 도시 발전의 밑거름으로 여겨진다. 그는 “두 도시가 지난해 맺은 첫 협약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용인시와 이천시의 상생협력을 위한 것이라면 두 번째 협약은 상생 방안을 구체화하고 정부에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도시는 세계시장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는 동반자이자 운명 공동체인 만큼 앞으로 유기적으로 소통 협력하며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시장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 반도체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중첩 규제를 풀어 미래 반도체산업의 전초기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마지막으로 “이제 시작일 뿐이며 어디서나 살기 좋은 이천, 희망찬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한 걸음씩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김 시장은 1973년 9급 면직원으로 시작해 2급 이사관으로 퇴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경기도 비전기획관과 행정안전부 감사담당관, 이천시 부시장 등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40여년간 경험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