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도에 불과한 시행사의 낮은 자기자본 비율과 건설사 등 제3자 보증에 의존하는 낙후된 재무구조가 우리나라 부동산PF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이 진단이 나왔다. 사업주체의 자기자본비율이 30~40%에 달하는 주요 선진국과 달리 극히 적은 자본으로도 사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한탕’을 노리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고, 경제 전체적으로 시스템리스크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행사가 스스로 자본을 확충하도록 다양한 지원정책을 도입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직간접 규제를 통해 PF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순주 연구위원은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 ‘갈라파고스적 부동산PF, 근본적 구조개선 필요’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0만명 이상의 고객이 손실을 입었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등 부동산PF는 지난 십수 년간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황 연구위원은 부동산PF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낮은 자기자본’과 ‘높은 보증 의존도’를 지목했다. 황 연구위원이 최근 3년(2021~2023년) 추진된 총액 100조원 규모의 PF사업장 300여개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개별 사업장에 필요한 총사업비는 평균 3749억원이었지만 시행사는 자기자본을 118억원(3.2%)만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6.8%(3631억원)는 빌린 돈으로 충당한 것이다. 자기자본 비율은 주거용(2.9%)이 상업용(4.3%)보다 낮았고, 지방(2.3%)이 수도권(3.9%)보다 낮았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는 공사계약을 수주한 건설사가 책임준공확약이라는 형태로 PF대출 상환을 사실상 보증해주고 있다.
이런 형태는 주요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실제 미국은 금융회사가 PF대출을 취급할 때 자기자본이 총사업비의 최소 3분의1(33%) 이상이 될 것을 요구하고,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는 시행사가 전체 자기자본의 33~50% 정도를 직접 투입하고 나머지는 지분투자자를 유치해 조달한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기자본을 통해 토지를 미리 확보한 후 공사비만 PF대출을 통해 조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토지비 대부분과 공사비 및 기타비용 전체를 PF대출을 통해 조달하는 탓에 사업성이 악화될 경우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는 우리와 달리 주요국은 차환 리스크가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저자본 고보증’ 구조는 소위 한탕을 노리는 영세 시행사의 난립을 초래한다. 자기자본 100억원만 투입하고도 총사업비 4000억원짜리 대규모 사업을 일으킨 뒤 개발 완료 후 최대 수백억원의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0년 기준 등록된 시행사는 6만개 이상이다. 또 지분투자자가 없어 제대로 된 사업성 평가가 이뤄지기 힘든 데다 제3자 보증에 의존한 대출로 ‘묻지마 투자’가 발생해 위험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되는 것도 문제라고 황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최근 증가세가 다소 주춤해졌지만 머지않아 금리 하락기에 접어들면 PF대출이 다시 증가해 새로운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면서 근본적인 개선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장기적 개선방안으로 시행사가 PF대출을 받을 때 일정 수준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요구하는 ‘직접규제’,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금융회사가 PF대출을 공급할 때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간접규제’ 도입을 제안했다. 아울러 지분투자자 유도를 위해 제3자 보증을 제한하는 규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 연구위원은 “저자본 고보증 구조가 장기간 지속된 현실을 고려할 때, 자기자본비율을 일시에 크게 높이는 것은 어렵고 부작용이 클 것”이라면서 “과도기적으로 먼저 다소 약한 수준의 자본확충 규제를 도입해 시행사가 스스로 자본을 확충하거나 지분투자자를 유치할 필요성을 마련하고, 동시에 자본확충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