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로 외식 대신 집밥 수요가 늘면서 창고형 할인점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대용량 정책을 내건 창고형 할인점 방문을 꺼리던 소비자들이 고공행진을 하는 먹거리 물가에 ‘가성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 시대 반사이익을 누리기 위해 창고형 할인점들은 단위당 가격을 낮추면서도 품질 경쟁력을 높이며 소비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20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9년 6조8644억원 수준이던 한국의 창고형 할인점 시장 규모는 올해 처음으로 9조원을 넘겨 9조914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창고형 할인점이 같은 상품을 일반 대형마트보다 낮은 가격에 선보일 수 있는 것은 매장·상품 운영의 효율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개별 상품이 아닌 박스 단위로 상품을 진열하고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핵심 생필품만 대량 매입해 단가를 낮춘 것이다. 대형마트의 절반 수준인 마진(이윤)에 신선식품의 경우 산지 직거래로 가격 거품을 뺐다. 창고형 할인점 상품 가격은 대형마트보다 평균 10∼15% 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해 주요 국산 과일의 작황 부진으로 과일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대용량 구매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과일, 채소 부문이 창고형 할인점의 호실적을 이끌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지난 18일까지 트레이더스의 과일·채소 매출은 전년 동기간 대비 각각 24%, 14% 늘어났다. 국산 과일 가격 급등 속에 부담이 낮은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주력 상품이 됐다. 트레이더스에서 연중 2980원에 판매되는 1.3㎏ 바나나는 같은 기간 전년 동기 대비 67% 매출이 증가했다. 파인애플 매출은 78%가량 늘어났다. 값싼 냉동 과일·채소도 소비자들의 식재료 물가 부담을 덜어주며 매출이 각각 38%, 30% 뛰었다. 맥스도 바나나, 오렌지와 같은 수입산 과일(40%)과 수입 돼지고기(25%) 등 신선식품이 ‘가성비 소비’ 바람을 타고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신선식품 수요가 높아지면서 각 창고형 할인점들은 품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트레이더스의 경우, 시즌 주력 운영 품목을 시중에 판매되는 상품과 품질 비교 검증을 통해 상품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는 1월에 사과, 딸기, 감귤, 수입청포도, 샤인머스캣 5개 품목을, 3월에는 사과, 딸기, 참외, 수입청포도, 오렌지 5개 품목을 시중에 판매되는 상품들과 품질 비교 테스트를 진행했다. 1, 3월에 진행한 테스트에서 딸기 당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 결과에 따라 농촌진흥청으로부터 품질 우수 표창을 받은 충남 홍성의 우수 작목반을 발굴해 신규 운영하기도 했다. 계란의 경우, 일반 대형마트에서는 10·15·30구를 주력으로 판매하지만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점을 반영해 60구 대용량으로 동물복지유정란을 개발했다. 해당 대용량 상품은 전체 계란류 중에서 매출 비중이 60%를 넘어서며 매출도 72.8% 증가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고물가 시대에 대용량·고품질·저가격 정책의 창고형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저성장 속에서 실질소득이 오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아끼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이 같은 소비 방식은 계속해서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