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짝 찾아 ‘나는 절로’…인연 만나 결혼 생각 절로 [S스토리-조계종 ‘짝 찾기’ 청춘남녀에 인기]

‘나는 절로 4기’ 8.2대 1 경쟁률 보여
남녀 30명 1박2일간 연수원서 교감
자기소개·산책 데이트 등 하며 소통

“젊은 사람들 연애하기 어려운 환경
일단 남녀가 만나야 출산도 가능해”
만남 주선에 참가자들 만족도 높아

뭔가 걸린 제비뽑기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더욱이 처음 만난 이성과 버스 옆자리에 앉아 대화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할 것도 없다. 지난 15일 아침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모인 25∼35세 청춘들이 그랬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해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하는 짝 찾기 프로그램 ‘나는 절로 4기’ 참가자들이다. 248명(남성 145명, 여성 103명)이 지원해 8.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30명(남녀 각 15명)이다. 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은 “(결혼까지 염두에 둔 연애 상대를 찾는) 간절함이 얼마나 큰지가 중요한 선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목적지인 충남 공주시 사곡면 한국문화연수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기 전 제비뽑기로 좌석이 배정됐다. 6명이 연수원에서 합류하기로 해 남녀 10쌍만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제비뽑기 운발이 약했던 여성 4명은 뒷좌석으로 밀려났다. 맥빠질 뻔했지만 중간 휴게소에서 다시 제비뽑기로 옆자리 짝이 모두 바뀌고 뽑기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설명에 미소가 번졌다. 솔로 미혼 남녀의 설렘과 기대를 가득 실은 버스 안은 금세 활기를 띠었다. 처음 수학여행 가는 초등학생들처럼 재잘거리는 소리가 싱그러웠다.

오후 2시쯤 한국문화연수원. 짐을 풀고 편한 템플스테이용 법복으로 갈아입은 전체 참가자가 점심 공양(식사) 후 큰선방에 모였다. 인기 TV 연애 프로그램 ‘나는 SOLO(솔로)’ 출연자처럼 본명 대신 가명이 적힌 명찰을 단 참가자들은 ‘저출산 대응 인식 개선’ 교육에 이어 자기소개 시간이 되자 긴장한 낯빛이었다. 수도권과 대구·강원·전북·세종 등 각지에서 온 이들은 군인, 군무원, 초등학교 교사, 변호사, 약사, 공공·금융기관·대기업 직원, 기자, 큐레이터, 해양경찰, 간호사, 항공사 승무원 등 직업도 다양했다. 하나같이 귀를 쫑긋 세우고 호감 후보군에 담아두려는 눈빛들이 튀었다.

 

1번 타자로 지명된 영수(34)는 “마이크를 잡으니 떨린다”면서도 “제가 길을 정말 잘 찾는다. (여성 분이) 어디든 가고 싶은 목적지나 관련 단어만 말해도 바로 찾아 데려갈 수 있다”고 자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한 지 6년째라는 준영(35)은 “밥과 청소, 빨래도 잘한다. 몸만 오시면 제가 다 해드릴 수 있다”고, 호영(30·군무원)도 “조금만 다가와 주시면 제가 그보다 백배 더 노력하겠다”며 구애성 발언을 날렸다.



여성 참가자 역시 수줍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일산에서 온 수희(27)는 “사진 잘 찍는 남자 좋아하니까 소질 있는 분들은 카메라 들고 오셔도 된다”고, 여군인 영란(35)은 “여행 등 활동적인 것 좋아하고, 요리도 잘해서 한식·중식 자격증이 있다. 같이 캠핑 가서 맛있는 요리해 먹을 남자 친구를 찾으러 나왔다”고 씩씩하게 말해 박수를 받았다. ‘물마중’(물질을 마친 해녀들을 물 밖 갯바위 등에서 마중하는 것)을 언급한 영숙(32)의 소개도 인상적이었다. “‘물마중’이란 단어를 되게 좋아합니다. 해녀들이 물질하고 나올 때 앞에 사람이 있기만 해도 사고가 많이 줄어든다고 해요. 저도 옆에 있기만 해도 의지되고 힘이 되는 짝을 만났으면 좋겠다 싶어 (‘나는 절로’에) 나오게 됐습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절로, 한국문화연수원 편’ 참가자들이 첫날 프로그램 중 하나인 ‘1대1 로테이션 차담’에서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자기소개가 끝나고 연수원 내 카페로 옮긴 참가자들은 이성 간 일대일 차담을 나누며 본격적인 탐색에 들어갔다. 남성들이 돌아가며 여성들 맞은편에 앉아 5분씩 대화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떠들썩한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지만 자신의 매력을 상대 마음속에 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체력과 집중력, 순발력, 입담을 두루 요구하는 오디션 무대 같았다. 나중에 만난 참가자 상당수가 “너무 시간이 짧고 공간도 시끄러워 여유 있게 대화하기보다 그냥 편하게 안면 트는 정도였다”(민수·32), “대화가 너무 산만하고 옆 사람과 너무 가까워 다들 ‘에너지가 빨렸다’고 하더라”(영희·27)는 등 일대일 로테이션 대화의 개선을 주문했다. 담소 뒤 여성에게 저녁 식사 상대 남성 선택권을 준 방식에도 일부는 아쉬워했다. 맨 앞에 앉은 여성부터 순차적으로 고르게 하면서 앉은 자리에 따라 후순위가 된 여성들은 호감 상대 선택지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 둘만의 청신호를 포착해 인연의 매듭을 하나씩 이어간 경우도 있었다.

 

선명상 체험으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참가자들은 저녁 공양과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자연스레 교감하며 한층 가까워졌다. 대화 부족에 대한 갈증도 모닥불 ‘불멍타임’과 야간 산책 데이트로 어느 정도 해소했다. TV프로그램처럼 카메라를 의식하거나 술의 힘을 빌릴 필요 없이 별빛 쏟아지고 풀벌레 우는 자연에 기대 편안한 얘기가 오갔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이 참 야속한 남녀도 있었을 게다. 오후 11시쯤 숙소로 돌아간 참가자들은 마음에 둔 상대가 누군지 재단 담당자에게 문자로 알렸다. 다음 날 아침 인근 마곡사를 둘러보기 전 서로 마음이 통한 최종 커플이 발표됐다. 짝을 이룬 14명의 얼굴이 환했다. 7쌍은 지난 4월 ‘나는 절로, 전등사편’ 4쌍(40%)을 넘어선 역대 최고 성사율(47%)이다. 간호사 수희와 커플이 된 호영은 “1박2일은 짧았지만 서로 호감을 갖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며 “지금 느끼는 감정 그대로 (관계를) 잘 이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참가자들이 7세기에 창건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마곡사와 그 주변에서 마지막 추억을 쌓은 뒤 행사는 마무리됐다.

커플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대체로 ‘나는 절로’ 프로그램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어도 직업 특성이나 바쁜 일 때문에 주위에 어울릴 만한 이성이 적고, 누군가를 편히 만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이런 기회가 많아지길 원했다.

승무원 수란(29)과 연결된 약사 철수(33)는 “프로그램이 알차고 밖에선 못하는 레크리에이션 등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며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많이 세우는데, 일단 남녀가 만나야 출산도 가능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해양경찰인 민수도 “나는 커플이 안 됐지만 같은 처지의 동료나 친구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절로’ 4기에서 최종 커플로 맺어진 참가자 호영(왼쪽)과 수희가 지난 16일 마곡사 경내 산책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들은 이 사진으로 ‘베스트 포토상’도 받았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이들은 무엇보다 ‘나는 절로’가 신원이 보증된 다양한 직역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거에 후한 점수를 줬다. 결혼정보회사나 데이트 앱, 취미 활동 모임 등에 가입하면 만남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불투명해 꺼린다는 것이다.

영숙과 인연이 된 용준(31)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연애를 안 한다기보다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다양한 경로로 소개팅해도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며 “(‘나는 절로’처럼)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단체가 주관하는 만남 프로그램이 자주 있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묘장 스님이 분석한 ‘나는 절로’의 인기 요인도 비슷했다. 그는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직업 등 지원서 내용이 맞는지 살핀 후 순수하게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니 안심하고 참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 성남시와 경남 김해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체 미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횟수와 규모는 적은 편이다.

 

지난 15∼16일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열린 ‘나는 절로’ 4기 참가자들이 큰 선방에서 입재식을 마친 후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스님(앞줄 가운데), 사무처장 덕운스님(오른쪽에서 네 번째), 한국문화연수원 본부장 금오스님(〃여섯 번째)과 기념사진을 하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재단은 앞서 2012년 저출생 대책의 하나로 보건복지부 후원을 받아 종교 불문 미혼남녀 대상 ‘만남 템플스테이’ 행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10년이 흘러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하자 지난해 11월 35번째 행사를 앞두고 이름을 바꾸면서 진행 방식도 참가자 친화적으로 대폭 손질했다. 이후 남녀 10명씩 20명을 선발한 ‘나는 절로’ 1∼3기 경쟁률이 최대 150대 1까지 치솟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5기는 8월쯤 진행할 예정이다.

재단 측은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통도사(경남 양산) 등 전국 주요 교구와 손잡고 ‘나는 절로’ 프로그램을 확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각지에 있는 많은 솔로가 인생의 짝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번 참가자 사이에선 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려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먼저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나는 절로’와 같이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직업 등이 검증된 이성을 만나볼 기회가 많아지는 것 못지않게 결혼 과정과 결혼 후에도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숙은 “대개 안정된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도 갖고 싶어하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결혼 비용과 내 집 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주저한다”며 “정부가 이런 사람들의 고충부터 덜어줄 수 있는 양질의 정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