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농축산물 물가가 높다는 통계를 놓고 한국은행과 농림축산식품부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한국 의식주 물가 수준이 경제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6배 가량 높다는 한은 보고서에 대해 송미령 농림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반박하자, 한은이 이를 재반박했다.
송 장관은 한은 보고서에 대해 농업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며 허점이 많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한은은 정부가 ‘물가 상승률’과 ‘물가 수준’ 개념을 뒤섞어 사용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농림부 장관, 한은 보고서에 이례적으로 공개 반박
한은은 지난 18일 ‘우리나라 물가 수준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영국 경제분석기관 EIU 통계(2023년 나라별 주요 도시 1곳 물가 기준·한국은 서울 기준)를 인용, 우리나라 의식주(의류·신발·식료품·월세) 물가가 OECD 평균(100)보다 55%나 높다고 밝혔다.
특히 세무품목별로 사과(1위), 돼지고기·오렌지(2위), 소고기(3위), 바나나·오이(4위) 등 농축산물 가격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집계됐다.
송미령 농림부 장관은 다음날인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이) 농업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물가 기준으로 분석, 농업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관이 다른 기관 발표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신인 송 장관은 연구방법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비판했다.
송 장관은 한은이 인용한 EIU 자료에 대해 “33개국 주요 도시의 생활비를 조사한 통계인데, 한국의 경우 GDP의 53%가 서울에 집중된 만큼 물가가 과대 추정될 수 있다”며 “조사 방식도 예컨대 각 도시에서 사과 가격 2개를 뽑아 평균을 내고 그냥 비교하다 보니 허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FAO(유엔식량농업기구) 기준, 우리 농식품 물가는 OECD 38개국 중 19번째, 낮지는 않지만 중간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20일 “각국의 세부품목별 가격을 비교하거나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거의 없어서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자회사의 데이터를 이용했다. OECD의 상위분류 데이터와 비교해 신뢰성을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송 장관은 한은이 한국 농식품 가격이 높은 원인으로 영세한 영농 규모로 인한 낮은 생산성과 고비용 유통구조를 꼽은 것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한은은 생산성을 ‘노동생산성’으로 봤는데, 한국은 고령농이 많기 때문에 생산성이 굉장히 낮게 나오는 것”이라며 “보통 경제학자들은 기술·자본·토지·노동 등이 다 통합된 ‘총요소 생산성’을 쓴다. 농지 대비 영세농가가 많아서 생산성이 낮다는 건 굉장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에 대해 “총요소 생산성은 시간에 따른 증가율만 볼수 있어 국가별 비교 자체가 어렵다”면서 “노동생산성의 경우 국가간 품목별 가격 격차를 보여줄 수 있어서 이용한다. 기존 연구에서도 쓰며 분석방법 자체가 문제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은 총재 “수입도 고려해야”...농림부 장관 “수입과 가격 상관 없어”
농산물 수입을 개방해야 한다는 한은의 제안에 대해서도 송 장관은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4월12일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 후 가진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오름세를 주도하고 있는 농산물 가격 구조 대해 “불편한 진실”이라며 가격 안정 해법으로 ‘수입’을 언급한 바 있다.
한은은 18일 보고서에서 이 총재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제시하며 농산물처럼 구조적 원인으로 가격이 오르는 품목은 수입과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한은은 어떤 품목 수입량이 많으면 개방도가 높다고 봤는데, 국내총생산(GDP) 중 교역량 비중을 개방도로 봐야 한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개방도가 너무 높아서 문제”라며 “한국 시장은 세분화돼 있어 수입이 많다고 해서 가격이 떨어지는 것과는 큰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은은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개방도를 다르게 볼수 있는데, 품목 수로는 개방도가 낮지 않지만 수입 비중으로 보면 곡물을 제외한 과일, 채소는 OECD 주요국과 비교해 (개방도가) 낮다”면서 “농림부는 교역량으로 개방도를 판단해야 한다며 수출수입을 다 본 것이고, 우리는 수입 비중을 기준으로 개방도를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독립기관으로서 국가 정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화두를 던지겠다는 의도일 뿐이라면서도, 연구 전문성에 대한 송 장관의 비판에 대해서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하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높은 생활비에 대한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진 것으로, 정책의 방향이나 속도 측면에서는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제시된 통계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은 국민의 혼란을 키우고 연구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만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