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전기본 절차’ [기후가 정치에게]

민주, 전기본 국회 동의 의무화 법안 발의
“민주적 통제 절차 필요해”
20·21대 국회서도 관련 법안 논의돼
양당, 여야 교대 때마다 찬반 바꿔

“국가 명운이 달린 중장기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일방적 의사결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민주적 통제 절차가 필요한 때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박지혜·김영환·박정현·백승아·염태영·임미애·차지호 의원 등은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전기본 국회 동의 의무화 법안’ 추진 계획을 밝히며 이같이 주장했다. ‘민주적 통제 절차’로서 전기본의 국회 동의 절차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정부는 전기본 수립·변경 시에 국회에 ‘보고’만 하면 된다. 전기본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년마다 향후 15년 단위로 전력수급 기본방향·장기전망·발전설비계획·전력수요 관리 등을 포함해 수립하는 행정계획이다.

폭염이 이어지며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국전력공사 경기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제11차 전기본 밑그림 격인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이 공개됐고, 즉각 야당·기후환경단체에서 우려를 쏟아낸 터다. 당장 제10차 전기본 확정 때 이미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30.2%에서 21.6%로 3분의 1 가까이 줄였는데 이번에 그 비중을 조금도 늘리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대신 신규 대형 원전 3기·소형모듈원전(SMR) 1기 추가 건설 등 내용이 담겨 윤석열정부의 원전 확대 기조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전기본 국회 동의 의무화 법안을 꺼내든 건 이런 윤석열정부의 에너지 정책 ‘마이웨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이들은 이 기자회견에서 “거꾸로 가는 윤석열정부의 기후정책이 대한민국과 지구의 미래를 불가역적으로 파괴하지 못하도록 22대 국회가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직후 민주당 김성환 의원 등 47명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사실 이런 법안이 발의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1·20대 국회 산자위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논의된 바 있다.

 

과거 국회 논의를 살펴보면 양당이 여야 입장을 교대할 때마다 이 법안에 대한 찬반을 달리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1대 국회 때는 정부와 함께 국민의힘이 “삼권분립을 존중해야 한다”며 반대했고, 20대 때는 유사한 법안에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이 찬성하고 여당인 민주당은 “삼권분립에 반한다”며 우려를 표한 것이다. 말 그대로 양당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식으로 이 문제를 다뤄온 셈이다. 이는 결국 전기본 국회 동의 의무화에 대한 찬반 또한 ‘민주적 통제’나 ‘삼권분립’ 문제가 아니라, 양당 간에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기후·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각 차에서 기인한단 걸 보여준다.

 

아래는 21·20대 산자위 논의를 개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20대에서 심사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채익 의원안)의 경우 전기본과 관련해 국회 ‘동의’가 아닌 ‘합의’ 절차를 신설토록 한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기본 국회 동의 의무화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 제공

◆21대: 민주 “尹정부, 마이동풍해”…국힘 “국회 필터링 절차 많아”

 

“마이동풍 했지요. 개는 짖어라, 기차는 간다 하셨지. 뭘 반영하셨다는 거예요?”(민주당 김성환 의원)

 

“개별 위원님들께서 생각하시는 부분들을 저희가 모두 다 반영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박일준 당시 산자부 2차관)

 

21대 국회 임기 중인 지난해 2월 국회 산자위 특허소위에서는 민주당 위원들이 국회 동의 절차를 명시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장섭 의원안)을 심사하면서 10차 전기본을 둘러싸고 정부 측을 맹공했다. 윤석열정부 들어 처음 내놓은 10차 전기본에 국회 산자위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단 취지였다. 김 의원은 이와 관련해 “다수 위원들이 사실상 10차 전기본 내 원자력 비중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는 것에 대해 명백하게 반대했는데 그 절차가 어떻게 반영됐냐”며 따졌다. 

 

같은당 정일영 의원도 10차 전기본과 관련해 산자위 보고 이후 수정된 사항이 없었단 점을 언급하며 “(절차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돼서 (정부가 전기본을) 국회에 보고하고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그러면 좀 수정이 되고 그래야 국회의 역할이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박 차관은 “평소 상임위가 열리거나 하게 되면 (위원들이) 그때 꼭 전기본이라고 언급하지 않으시더라도 전력에 관한 내용을 많이 지적하시고 발언하신다”며 “관련 내용을 다 염두에 두고 검토하면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산출물이 전기본일 뿐이지, 그 전에 위원들이 말씀하신 사항이 많이 검토돼 전기본에 포함된다”고 반박했다. 전기본 보고 전 단계에서 국회 의견이 자연스레 반영되고 있단 취지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도 박 차관을 거들며 “삼권분립 차원에서 행정부가 책임성을 갖고 일을 하고 그 책임에 대한 부분을 심판받으면 되는 것이다. 국회에선 행정부에서 진행한 부분에 대해 많은 부분에 필터링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1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예결위회의장의 문틈 사이로 국회 앰블럼이 보인다. 연합뉴스

◆20대: 국힘 “국회가 무력해”…민주 “삼권분립에 안맞아”

 

21대 국회에서 전기본 국회 동의 의무화 법안 논의의 시발점이 된 게 10차 전기본이었다면, 20대에선 8차 전기본이 유사한 법안 추진의 불을 댕겼다. 문재인정부가 2017년 발표한 8차 전기본은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건설 계획 취소 등 탈원전 기조를 분명히 해 당시 논란이 된 터였다.

 

관련 법안을 심사한 2018년 3월 산자위 법안소위에서 이 법안을 발의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 백년지대계인 에너지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회가 (전기본 관련) 업무보고만 받고 마는 게 아니라 최소한도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선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정운천 의원도 이 의원을 거들며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의 쌀인 에너지 수급계획이 크게 변동하는데도 단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보고만 받는 것으로 끝났다. 이거 완전 국회가 무력화돼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이 자리에서 법안에 반대하며 “법안 성격을 갖고 있거나 예산안의 성격을 갖고 있거나 하는 경우에 한해 우리 국회가 행정부가 하는 일을 승인하거나 동의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개별 행정 행위에 관한 사안에서 일일이 국회 동의를 받게 한다든지 승인을 받게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백재현 의원도 송 의원을 거들며 “삼권분립상에도 안 맞는 얘기”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은 민주당 송 의원 의견과 관련해 “예산은 정부에서 편성권이 있다. 그 다음 심의·확정권은 국회에 있다. 조금 전에 (전기본이) 행정계획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결론 내는 게 안 맞다고 했는데, 예산도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전기본을 마련해서 국회에서 심의·확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송 의원은 “그런 식이면 한 없이 승인을 받아야 할 사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고, 김 의원은 “한없이가 아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참고자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록(2023년2월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록(2018년3월19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의 주요내용과 향후과제(국회입법조사처·2023년1월27일)

 

정치가 기후에 답하는 그 날까지 씁니다, 기후가 정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