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지순례(하지) 기간 50도가 넘는 폭염에 1200명 가까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사우디 정부는 자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2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고위 관료는 성지순례 참사와 관련해 “국가가 (관리 책임에) 실패하지 않았지만 위험을 간과한 일부 사람들의 오판이 있었다”면서 “극심한 폭염과 힘겨운 기상 조건에서 발생한 사태”라고 덧붙였다.
사우디 정부가 성지순례 사태 이후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FP에 따르면 올해 성지순례 기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등으로 지금까지 1126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망자 수를 117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5년 성지순례 기간 압사 사고로 2000명 이상이 숨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집트 국적이었다. AFP통신은 아랍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이집트인 65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민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9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요르단, 이란, 세네갈, 수단,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자치지역에서도 사망자가 확인됐다. 미국인도 다수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온열질환으로 입원한 사람이나 실종된 사람이 수백명이 넘는 상황이어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피해가 이처럼 컸던 이유는 올해 성지순례 기간 대낮 온도가 52도까지 오르는 불볕더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허가받지 않은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냉방시설 등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치러지는 성지순례는 무슬림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5대 의무 중 하나다.
무슬림들은 일생에 반드시 한번은 메카와 메디나를 찾아 성지순례를 해야 하는데, 사우디 당국은 국가별 할당제를 통해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그 때문에 관광비자 등을 통해 사우디에 입국한 뒤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성지순례를 시도하는 인원도 늘고 있다.
사우디 당국에 따르면 올해는 180만여명이 허가를 받고 메카를 찾았지만, 비공식 순례자 수도 40만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 당국은 현장에서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순례도 허용했지만, 이들에게는 에어컨 등 더위를 견딜 시설 등이 제공되지 않았다.
여기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순례 버스 이용도 금지되면서 뙤약볕에 수 ㎞를 걸어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성지 순례자들은 경찰이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버스 이용을 금지했다고 주장했다.
미허가 순례자들의 피해가 컸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으로 해석된다.
AFP는 이집트인 사망자 658명 중 630명이 허가받지 않은 순례자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