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의대생들이 강의실을 떠난 지 4개월이 지났다. 예년 같으면 1학기가 종강할 시기지만, 의대 수업은 실질적인 개강조차 못 한 채 한 학기가 흘렀다. 정부는 “학생들을 설득해 8월까지 돌아오게 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대학은 학생들을 기다리느라 속이 바짝바짝 타는 상황이다.
의대 관련 갈등이 한창 깊어지던 지난 3월 취임한 박상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은 “7월에 의대생 수업 거부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등록금 반환, 과밀 수업 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교협은 전국 4년제 대학의 공식 협의체로, 대학 총장들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고 고등교육 정책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의대가 있는 대학(중앙대)의 총장이기도 한 박 회장은 의대 사태를 해결할 해법으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을 들었다. 2026학년도 정원에 대해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의료계와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좋은 말들로 인사드리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에 중책을 맡은 박 회장을 지난 17일 서울 금천구 대교협 사무실에서 만났다.
―의대생들을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을까.
“몇 주 전 학생들 만났는데 의사 국가고시 일정 변경, 경찰 수사 중인 의대생 문제 해결, 전공의 시험 접수 일정 변경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달라고 해서 교육부에 전달했는데 정부는 ‘돌아와야 들어준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의대생 모두 문제를 해결하려고 터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입장만 주장한다. 2026학년도 정원도 정부가 ‘의료계가 합리적인 근거를 가져온다면 다시 논의해보겠다’고 하지 말고 좀 더 전향적으로 유연하게 논의하는 자세를 보이고, 의료계도 일단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줄어야 한다는 입장인가.
“정부가 양보해서 좀 줄여야 한다고 본다. 증원은 찬성이지만 천천히 늘려가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단기간에 갑작스럽게 늘려서 문제를 야기할 필요가 있나. 특히 정원이 한순간에 몇 배가 된 대학은 수업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교육 여건 맞추기 쉽지 않은 대학은 정원을 줄이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교육부 주도로 2025학년도부터 수도권대·국립대의 전공자율선택제(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 선발 비중이 크게 늘었다. 대학 입장에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은데.
“학생의 진로 탐색 기회를 확대하고 전공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취지는 좋다. 하지만 선발 유형과 비율까지 정부가 정해주는 건 과한 것 같다. 전공자율선택제 확대는 재정지원사업 평가와 연계돼 국립대와 수도권 대학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재정지원사업 평가와 연계해 정책이 추진되는 것은 아쉽다. 사전에 대학과 소통해 정책이 설계되고 대학이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
―윤석열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얘기하지만 첨단학과 증원부터 전공자율선택제 확대, 의대 증원 등 정부 주도의 변화가 많다.
“고등교육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 변화와 사회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일정 정도 정부 주도 정책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좋은 정책이라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와 대학이 정책 방향에 대해 깊이 소통하고, 대학 구성원들 간에 긴밀히 협의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시기를 유연하게 조절하거나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한 지원도 함께 고려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정책은 좋은데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 의대 증원 시 이공계 홀대, 자율전공선택제 확대 시 인문계 소외는 명약관화인데 이런 대안들이 제시되지 않았다. 정책 발표 시 이 정책으로 파생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부터 발표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정책 추진은 좋은데 순서가 아쉽다.”
―교육부는 등록금을 동결·인하한 대학에만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식으로 오랫동안 등록금을 규제하고 있다.
“대학들이 길게는 15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다. 이런 등록금 규제는 정부가 이제 놔야 한다. 더는 감내하기 어렵다. 등록금 규제는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주성, 전문성,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법에 등록금 인상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직전 3개년 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2024학년도는 5.64%) 한 번에 10∼20% 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나. 물가 인상으로 인건비, 공공요금 등 대학 지출이 계속 느는데 등록금을 그냥 두면 고등교육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이공계 인재 육성도 기자재가 있어야 한다. 지금 등록금 규모로는 어렵다.”
―올해 26개교는 국가장학금 지원을 포기하고 등록금을 올렸다. 내년에는 등록금 인상 대학이 얼마나 될 것으로 보나.
“올해 더 많은 대학이 올리고 싶어했으나 총선이 있어 정무적인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등록금을 올리면 정부의 다른 재정지원사업 선정 등에도 타격이 있을까 봐 눈치 보는 분위기였지만, 이제 더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까지는 비수도권 소규모 대학 위주로 올렸지만, 내년에는 서울 주요 대학들도 올릴 가능성이 있다. 등록금 인상 대학은 올해의 배는 될 것이라 본다.”
―등록금이 계속 동결됐는데 대학들은 어떻게 버텼나.
“지난 15년간 외국인 유학생으로 버텼다. 글로벌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유학생 유치는 대부분 정원을 채우는 목적이다. 대학 교육 질을 높이려면 지금처럼 재정적인 목적으로 유학생을 뽑아선 안 된다. 우리가 데려오고 싶은 유학생을 장학금 주고 데려와야 하고, 그러려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 등록금이 교육 질과 깊이 연결돼 있다.”
―1년 임기 중 4개월이 지났다. 남은 임기 동안 역점사업은.
“등록금과 재정문제다. 현재 고등교육재정 지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비 너무 열악하다. 재정적 어려움은 교육의 질 저하, 대학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고등교육 예산은 초·중등예산과 달리 매년 국가 예산 편성을 통해 확정돼 시기별 변동이 크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고등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또 정치자금처럼 대학에 10만원 기부하면 세액공제되는 방안을 총장들이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대교협 회원 197개교와 소통하고, 대학의 의견이 최대한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박상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은…
●1961년 출생 ●중앙대 통계학 학·석사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 통계학 박사 ●중앙대 응용통계학과 교수 ●미국매사추세츠대 초빙교수 ●중앙대 입학처장·기획처장·기획관리본부장·행정부총장 ●중앙대 총장(2020년 3월∼) ●교육부 구조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28대 회장(202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