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진실화해위 규명대상 아냐”

피해자측 “잘못에 책임져야…한국 정부 실망스러워”
베트남 하미마을 학살사건 피해자 응우옌티탄 씨가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진실화해위의 신청 각하 취소 소송'에서 패소 후 입장을 화상으로 밝히고 있다. 뉴시스

베트남 전쟁시기 파병된 국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 사건을 진실 규명 대상에서 배제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은 적법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재판부 결론에 유감을 드러내며 항소 입장을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정희)는 응우옌티탄씨 등 5명이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신청 각하 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25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의 입법 취지는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이 침해된 경우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며 “이 법이 규정한 진실규명 조사 대상에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의 주장을 따르면 진실규명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조사나 진실규명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외교적 갈등 등 여러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며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을 거치지 않고도 대한민국에 권리구제를 신청할 방법이 많다”고 했다.

 

피해 당사자인 응우옌씨 등은 지난 2022년 4월 진실화해위에 하미마을 학살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이 사건은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하미마을에서 해병대 청룡부대가 현지 민간인 135명을 총격해 살해, 가매장했다고 추정되는 사건이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전원위원회에서 4대 3 의견으로 하미 사건을 조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쟁 당시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규명 대상이 아니다”란 의견과 “국가 책임 여부가 중요하다”는 반박 사이에서 ‘조사 반대’ 쪽으로 결과가 갈렸다.

 

이에 응우옌씨 등 이 사건 피해자와 유족은 “과거사정리법에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사건’을 조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규정은 없다”며 불복 소송을 냈다.

 

이날 선고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고 대리인인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재판부는 진실규명이 아닌 민사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길 수 있다면 소송 내 봐’라며 조롱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법부는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에서 화상으로 기자회견에 참여한 응우옌 씨는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거절하는 한국 정부가 실망스럽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데 어찌 이런 판결이 났을까”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