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고향 거리를 걷는다. 고향에서 산 것보다 고향을 떠나 산 지가 더 오래라 은밀히 말하면 오늘 내가 걷는 거리는 예전에 내가 아는 고향 거리는 아니다. 변해도 정말 많이 변하여 약간이라도 옛 정취를 되살려 주는 건 동네 이름이 주는 향수뿐이다.
그래도 길을 걷다 보면 어느 후미진 골목과 골목 사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곳이 한두 군데 눈에 띈다. 개발의 힘이 피해 간 곳. 인공의 미가 자연의 우호적인 무관심에 고개 숙인 곳. 그런 곳을 만날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루두루 돌아본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스며든 세월의 더께를 알아보고 발견해 내듯이. 그러나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되돌아오는 것도 없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변하면 끝이다. 남는 것도 없고 남겨놓을 것도 없이 모든 게 황무지, 무(無)가 되어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만남과 이별이 시야를 벗어나면 다시 돌아올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
그래도 해변을 걷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바다 냄새 때문이다. 그 냄새는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냄새처럼 수평선 위로 그리움이란 무지개를 사방으로 퍼뜨린다. 엄마 손을 잡고 맨발로 해운대 해변을 걷고 광안리 해변을 걷고 태종대 몽돌해변으로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듣던 나날들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 그 따뜻한 추억의 한 조각이 고향 바다를 걷는 나를 마냥 천진무구한 아이로, 아직도 사람을 믿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을 바꿀 힘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찾으려 희망하고 기대하는 사람으로 늙어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