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與보다 통 큰 반도체지원법 꺼낸 野, 정책 협치 물꼬 트길

세제혜택 10년 연장, 공제 10%p 상향
‘대기업 특혜’ 등 낡은 인식 벗어나 다행
진일보한 합의안 도출, 속도전 나설 때

더불어민주당이 그제 반도체 산업에 100조원을 푸는 반도체지원법을 공개했다. 이 법은 반도체 기술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기한을 올해 말에서 10년 더 연장하고 세액공제율도 높이는 게 핵심이다. 10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지원까지 담아 야당표 ‘K칩스법’이라 할 만하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당론으로 정해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할 예정이다. 대표발의자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반도체 산업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핵심 국가전략산업”이라고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민주당이 ‘대기업 특혜’, ‘부자 감세’와 같은 시대착오적 인식틀에서 벗어난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야당표 K칩스법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법안보다 파격적이다. 세제 공제 기한이 정부·여당 안(6년)보다 더 길다. 현행 세액공제율을 유지하는 여당과는 달리 민주당은 10%포인트씩 높였다. 시설투자는 대기업 25%, 중소기업 35%이고 연구개발(R&D)도 대기업 40%, 중소기업 50%다. 반도체 기금과 특별회계로 조성되는 100조원 정책금융은 정부 안보다 5배 이상 많다. 김 의원이 제안한 대통령 직속 ‘국가반도체위원회’는 여당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와 유사하다. 반도체용 산업용수·전력을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한다는 입장도 정부·여당과 다르지 않다.



정부도 다음 달부터 18조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를 3년 연장하고 R&D·인력양성 등에도 5조원 이상의 재정을 투입한다. 여야와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지원안에 경쟁국과는 달리 보조금 지급이 빠진 건 아쉬운 대목이다. 팹리스(설계)와 후공정, 소재·부품·장비처럼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에 한해 보조금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시대 반도체는 첨단산업의 쌀이자 핵심 전략물자이고 단순한 재벌 사업이 아니라 국가안보산업이다. 미국이 해외기업까지 포함해 520억달러의 세금 혜택과 보조금을 쏟아붓는 이유다. 일본·유럽연합(EU)·중국 등도 전방위 지원에 돌입한 지 오래다. 국가대항전으로 펼쳐지는 반도체 전쟁에서 기업의 분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말뿐인 지원책이 아니라 과감한 실천과 속도전으로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 첨단 공정이 경쟁국에 밀리고 주력인 메모리조차 초격차가 사라지고 있지 않는가. 여야는 머리를 맞대 진일보한 합의안을 서둘러 마련해 법제화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