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업체 “우린 작업 지시 안 해”… 커지는 불법 파견 의혹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 참사]

아리셀 측 해명 진실 공방

“출입증도 없어… 3번 정도 방문”
명부 소실 주장에 “이메일로 넘겨”
주소지 아리셀 공장으로 해놓고
제조업 등록 ‘위장 하도급’ 인정

공장·인력업체 관계자 5명 입건
11명 추가돼… 총 14명 신원 확인
국과수 “사망 23명 전원 질식사”

“우리가 인터넷 모집 공고를 내고 사람이 모이면 전화나 문자로 아리셀 측 통근버스 타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파견 근로자들이) 공장에 도착하면 아리셀 담당자가 인솔해 근무에 투입하는 식이죠.”(인력업체 ‘메이셀’ 관계자)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업체 아리셀에 외국인 일용직 근로자 등을 소개했던 메이셀 핵심 관계자는 26일 ‘파견 근로자에 대한 업무지시는 파견업체에서 내렸다’는 아리셀 측 해명에 강하게 반발했다.

“책임자 처벌”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가 26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현장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23명의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화성=연합뉴스

업계에 따르면 메이셀이 원청인 아리셀과 도급 계약을 맺고, 근로자에게 업무지시를 했다면 독자 업무 처리가 불가능한 메이셀의 파견법 위반이 된다. 또 인력만 공급했어도 불법 파견이 된다. 18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숨진 화재 사건이 불법 파견과 이를 둘러싼 업체 간 책임 공방으로 확산한 것이다.

 

메이셀은 지난달 7일 일차전지 제조업체로 등기하면서 직업소개업 등록은 하지 않았다. 메이셀 관계자는 “(명칭을 바꿔) 창업하느라 등록하거나 파견 허가를 받은 상태는 아니었다”면서 “(편의상) 주소지를 아리셀 공장으로 해놓고 사업자 등록도 제조업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일차전지 업계까지 만연한 ‘위장 하도급’을 인정한 셈이다.

 

그는 “경비실을 거쳐야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출입증이 없어 아리셀 측 담당자가 내려와야 통과가 됐다”며 “인력을 보내기 전 회사 설명 차원에서 한 차례 방문한 것을 비롯해 모두 세 번 정도 찾아갔을 따름”이라고 했다.

 

이어 “(메이셀 직원이) 공장에서 근무했고 작업 지시를 했다는 게 어이가 없다”며 “(파견 근로자들이) 그저 ‘생산’ 업무에 투입되는 줄 알았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경찰조사에서 모두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리셀에선 파견 인원 명부가 (소실돼) 없다고 하는데, 파견 때마다 이메일로 업데이트해 넘겨 지금까지 보낸 것만 수백장”이라고 했다. 이 이메일 이력서에는 파견 근로자들의 신분증 사본과 주민(비자·여권)번호, 전화번호 등이 담겼다.

 

사고 당일 메이셀이 보낸 인력은 50명가량이라고 했다. 53명의 외부 근로자가 일했다는 아리셀 측 설명과 상통한다. 메이셀에 따르면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 18명은 모두 체류·취업 등 합법적 비자를 갖고 있었는데, 아리셀은 이들을 고용할 때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하는 특례고용확인서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화성시 소재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주변 도로에 흩어져 있는 배터리 파편. 연합뉴스

앞서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회사 고용구조와 관련해 ‘파견’과 ‘도급’이라는 단어를 혼용했다. 특히 박 대표는 “불법 파견은 없었고 충분한 안전교육을 했다”며 “이들에 대한 업무지시는 파견업체에서 내렸고, 인적 사항도 확보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리셀은 이와 관련한 추가 질의에는 답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일과사람의 최종연 변호사는 “도급계약서가 없으니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 누가 하청 근로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했는지를 구분해 봐야 한다”며 “불법 파견이든 적법 용역이든 그 자체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아리셀 대표나 안전책임자가 불법 파견에 대해 가중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민길수 고용노동부 지역사고수습본부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원청인 아리셀과 인력파견 업체 메이셀 간 불법 파견 내지 편법 도급 계약 논란에 대해 관련 증거를 토대로 조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메이셀이 산재 및 고용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사실을 공개했다. 노동당국은 이날 아리셀에 대해 공식적인 ‘전면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경찰과 노동부는 이날 오후 아리셀 공장과 메이셀, 박 대표 자택 등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공정 관련 서류와 전자정보, 사측 관계자들의 휴대전화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두 기관은 박 대표와 총괄본부장, 안전분야 담당자 등 아리셀 관계자 3명과 인력공급 업체 관계자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하고, 전원 출국금지 조치했다.

 

이달 24일 오전 10시30분쯤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일어난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사망자 11명의 DNA 대조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한국인 1명(여성), 중국인 9명(남성 2명, 여성 7명), 라오스인 1명(여성)이다. 이로써 사망자 23명 중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14명으로 늘었다. 국과수는 부검 결과 사망자 전원이 화재로 인해 질식사했다는 구두 소견을 수사본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