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철의 여인, 러 맞서 EU 외교안보 지휘봉 잡나

카야 칼라스 현 에스토니아 총리
EU 새 집행부 핵심 요직 맡을 듯
러 겨냥 강경 정책 쏟아낼 가능성

국제기구 유럽연합(EU)엔 흔히 ‘빅3’로 불리는 세 가지 핵심 보직이 있다.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총리에 비견되는 EU 집행위원장, 그리고 외교부·국방부 두 부처 장관을 합친 것과 같은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외교안보 고위대표 자리에 ‘북유럽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카야 칼라스(47) 현 에스토니아 총리가 임명될 것이 확실하다는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북유럽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차기 EU 집행부에서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EU의 가장 중요한 3대 직책을 채울 임명 결정이 지체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다른 EU 회원국들을 향해 촉구했다. 독일은 EU 역내 1위의 경제대국인 동시에 EU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총 705석인 유럽의회 의석 가운데 가장 많은 96석이 독일 몫으로 배정돼 있다.

 

현재 정상회의 상임의장에는 안토니우 코스타 전 포르투갈 총리, 집행위원장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위원장, 외교안보 고위대표에는 카야 칼라스 현 에스토니아 총리가 각각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정식으로 그 자리에 취임하기 위해선 유럽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숄츠 총리의 발언은 독일 출신인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유임이 하루빨리 확정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EU를 넘어 국제사회의 눈길을 끄는 인물은 다름아닌 칼라스 총리다. 한때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후보로도 거론된 그가 EU의 외교안보 정책을 맡을 경우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대한 EU의 태도가 한층 더 강경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더불어 ‘발트 3국’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쯤이고 인구는 약 130만명으로 우리 울산보다 좀 많다. 18세기 초부터 200년간 제정 러시아 지배를 받고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 독립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소련(현 러시아)과 나치 독일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가 결국 소련에 병합됐다.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를 계기로 1991년에야 광복을 맞이했다.

EU 차기 집행부의 ‘빅3’로 거론되는 인물들. 왼쪽부터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맡을 것으로 보이는 카야 칼라스 현 에스토니아 총리, EU 집행위원장으로 유임될 가능성이 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위원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확실시되는 안토니우 코스타 전 포르투갈 총리. AFP연합뉴스

오늘날 에스토니아인들은 소련 치하 공산정권 시절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로 여긴다. 공산주의와 소련, 그리고 그 후예인 러시아에 대한 강한 혐오는 에스토니아를 일찌감치 서방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2004년 나토와 EU에 가입했다.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한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달리 에스토니아는 북한을 경원시하며 한국하고만 외교관계를 맺었다.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군사원조를 제공한 나라는 물론 미국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 금액 비율이 제일 높은 국가는 다름 아닌 에스토니아다. 작은 경제 규모임에도 말 그대로 국력을 쥐어짜 우크라이나를 돕는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 및 그 국가원수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비판에 앞장서 온 칼라스 총리에게 ‘북유럽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철의 여인’은 1980년대 영국 총리를 지내며 강경한 반공정책을 편 마거릿 대처의 애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