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상가 건물에서 시작한 작은 개척 교회를 수천 명 교인을 둔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목사 폴(박지일). 온 교인이 합심해 10년 만에 교회 빚을 다 갚자 ‘축복의 날’로 선포하며 작심했던 설교를 한다. “이 교회에 금이 간 부분을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건물을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든지 간에 (교회 공동체는) 무너져 내릴 겁니다”라며 자신이 기도 중 들었다는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지옥은 없다”라고.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담임 목사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자 교회 내부는 혼란에 빠진다. 기독교 신앙의 근간인 구원(천국)과 심판(지옥)에 대한 믿음을 뒤흔든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부목사 조슈아(김상보)와 일부 교인이 격하게 반발하며 떠나도 폴은 개의치 않는다. 급기야 독실한 평신도 제니(박인춘)에게 “세상에 끔찍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살면서 행한 모든 죄가 다 깨끗이 씻겨지는 게 천국 아니냐”며 히틀러도 천국에 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교인 숫자가 급감해 교회가 위기에 몰려도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사람들의 이해 부족 탓으로 여긴다. 하지만 평생 우군이라 믿었던 아내 엘리자베스(안민영)와 장로 제이(김종철)마저 등을 돌린다.
지난 25일 개막한 연극 ‘크리스천스’는 신학적 논쟁으로 긴장감이 넘치지만 특정 종교의 울타리에만 가둬둘 수 없는 이야기다. 가족·조직·지역사회·국가 등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어떻게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고 파국으로 치닫는지, 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곱씹게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각과 입장은 헤아리지 않은 채 특정인 등 소수가 자신의 신념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불통의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완벽한 너그러움’을 추구하던 폴이 조슈아를 비롯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교인들이 떠나는 걸 반기면서 “나무가 더 잘 자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지치기도 필요한 거니까”라고 합리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아내 엘리자베스가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꼬집을 때도 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다른 사람을 위한 거야”라고 항변한다. 극 마지막, 혼자 외롭게 남아 왜 이렇게 됐는지를 돌아보는 폴의 표정이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