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박하지만 그것이 주는 기쁨과 감동은 더없이 큰 영화들이 있다. 한국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인 정영선에 관한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그런 경우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 나의 희열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내 안에 결핍된 것, 그렇기에 간절히 열망하는 어떤 것을 이 영화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자연의 일부였던 인간은 근대 이후 산업화된 도시의 거주자가 되면서 자연에서 분리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녹음은 회색의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였고 태양의 움직임을 따르던 인간의 생체 리듬은 인위적인 근대적 시간 구분에 좌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30만년 이상 지속되어 인간의 DNA에 각인된 생체 리듬이 기껏해야 200∼300년 사이에 일어난 물리적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까? 당연히 현대인은 아프다. 이런저런 신경증적 질병의 징후에 시달린다. 조경이란 현대사회가 제거한 자연을 도시 속에 다시 살려내는 인위적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도심의 공원이나 정원은 생명력이 부재한 무미건조한 ‘자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위적인 것조차 우리를 치유하는 힘이 있고 어떻게든 우리는 그 인공화된 ‘자연’이라도 곁에 두고자 한다.
정영선의 작업은 1970년대 국토 개발과 함께 전격 도입된 한국 조경사와 궤를 같이한다. 한국 조경의 역사가 정영선의 손에서 큰 틀을 잡았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조경은 땅의 기억과 역사를 기념하는 장소를 만드는 일이었고 자연이 지닌 본래의 아름다움을 살려 조화로운 삶을 꿈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부터 개인의 정원까지 방대한 영역을 망라하는 작업 속에서 그는 일관되게 사람과 경관, 건축과 도시, 대지를 연결하는 작업을 추구했다. 그는 조경사를 ‘연결사’라 칭한다. 할아버지 과수원의 바위틈에 핀 백합을 보며 시인의 감성을 키웠던 소녀는 대한민국의 땅에 시를 쓰고 싶어 했고 그러한 감성으로 우리 땅이 가진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