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곳에 서서 대전 산내 골령골 평화공원의 조속한 조성이 첫번째 바람이라고 했는데, 올해도 그 바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27일 오전 전미경(73) 대전산내골령골피학살자유족회장의 애끓는 마음이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을 울렸다.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열린 이날 유족대표로 선 전미경 유족회장은 “골령골 산내 평화공원은 일년 전과 같이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며 “올해 착공도 미지수인 상태”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골령골 평화공원은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전국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조성을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공모에서 대전 낭월동 골령골 부지가 대상지로 선정됐다. 추모관과 인권전시관, 상징물 등이 들어서는 평화공원은 당초 2020년까지 완공 예정이었으나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여기에 건축비 상승 등으로 사업비가 401억원에서 591억원으로 200억원 가까이 높아지자 사업타당성재검토 대상이 돼 지난해 3월부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용역을 진행 중이다.
전 유족회장은 진실 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적극적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골령골에서 발굴된 1441구의 유해 중 유전자(DNA) 검사로 신원이 확인된 건 단 두 명”이라면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모든 분들이 진실규명서를 받게 하는 게 제 마지막 바람이었는데, 지난 3년간 사건 처리율은 60%에 불과하고 그 중 진실규명률은 단 30%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유족회장은 “진실화해위의 조사 기간은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며 “진실 규명 신청을 한 대전형무소 피학살자 유족들의 심정은 타들어가고 있다. 유족들이 진실규명서를 받을 수 있도록, 저의 바람이 내년 추모제 전에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김복영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장은 추도사에서 “부모 형제를 잃은 지 74년이란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늘 슬픔과 분노가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며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과거 잘못된 사건에 대해 한 점의 오점 없이 샅샅이 밝혀 유족들이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안히 살 수 있게 해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박희조 동구청장과 김제선 중구청장, 전 유족회장을 비롯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이 참석했다.
해외출장 중인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날 위령제에 추도사를 보냈다. 이 시장은 추도사에서 “현재 조성중인 산내평화공원은 과거의 과오에 대한 성찰과 다짐을 미래 세대로까지 지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며 “평화와 인권의 지고한 가치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골령골의 가슴 아픈 별칭 그 위에 놓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조성해 나가겠다”고 했다.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린다.
1950년 6·25전쟁 이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있던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등 정치범과 대전·충남지역 인근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끌려와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처형돼 묻혔다. 확인된 골령골 피해자 명단 500명 중 300여명이 제주4·3사건의 피해자다.
2015년 민간 차원의 유해 발굴 이후 5년 만인 2020년부터 국가 차원의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 4000여는 세종 추모의집에 임시 안치돼 있다. 이날 위령제에선 ‘민간인 학살 희생자 발굴 유해 화장 반대 서명 운동’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