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급 대사’ 싱하이밍의 이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92년 한·중 수교는 노태우정부가 끈질기게 추진한 북방정책의 ‘화룡점정’이었다. 지금은 인도에 추월을 당했으나 당시 중국 인구는 11억명으로 단연 세계 1위였다. ‘거대한 시장이 새로 열렸다’라는 기대감에 국내에서 중국 열풍이 불었다. 반면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가깝게 지낸 우방인 대만은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았다. 이미 영국·프랑스·일본·미국 등 세계 주요국이 모두 대만과 단교한 상황이었으나, 그래도 ‘같은 분단국이자 투철한 반공 국가인 한국만은 우리 곁을 지킬 것’이라던 대만인의 믿음이 무너졌다.

 

2023년 6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가 서울 성북구의 주한 중국 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대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초대 주중 대사로 외교부 차관을 지낸 노재원 전 주(駐)캐나다 대사를 보낸 점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은 중국을 극진히 예우했다. 노 대사 이후로도 중량급 인사가 베이징에서 한국을 대표했다. 김대중(DJ)정부 시절에는 홍순영 전 외교부 장관이 주중 대사로 나가기도 했다. 중국을 특히 중시한 DJ는 2001년 9월 홍 대사를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해 국내로 불러들이며 핵심 측근인 김하중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차관급)을 새 주중 대사로 발탁했다. 김 대사는 장관보다는 낮은 직급이었으나 DJ의 두터운 신임 아래 2008년 3월까지 무려 7년 넘게 베이징 대사관을 지켰다.

 

2020년 1월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 대사(왼쪽)가 청와대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중국은 주한 대사로 우리 외교부 부(副)국장급에 해당하는 인물을 보내왔다. 이후 한·중 간 교역이 증가하고 인적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국장급으로 한 단계 올리긴 했으나, 여전히 평양 주재 중국 대사보다는 격이 한참 낮다. 북한과 혈맹 관계임을 자처하는 중국은 주북한 대사로 외교부 차관급 인사를 임명한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 그리고 독일·일본 같은 경제대국에 파견하는 대사와 동급이다. 북한이 적어도 중국 외교에선 미국이나 러시아와 대등한 예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1월 부임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가 오는 7월 이임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 외교부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로 한국어가 유창한 싱 대사 역시 국장급이다. 그가 2023년 6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윤석열정부의 외교 기조를 정면으로 비판했을 때 이 대표를 겨냥해 “외교부의 국장급에 불과한 싱 대사에게 훈시에 가까운 일장 연설을 고분고분 듣고 왔다”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다. 중국이 한·중 관계를 중시한다면 주한 대사의 격을 올리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