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속 암환자는 대부분 삭발한 머리로 등장한다. 항암제의 특정 성분이 모낭세포나 피부세포를 파괴하는 탓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항암 치료 이후 ‘냉각모자(쿨링캡)’로 탈모를 방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진석·암교육센터 조주희·임상역학연구센터 강단비 교수 연구팀은 2020년 12월 23일부터 2021년 8월 27일 사이 유방암 1~3기로 진단받고 치료받은 139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냉각모자의 탈모 예방 효과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유방암, 부인암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항암제의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Cyclophosphamide), 도세탁셀(Docetaxel), 독소루비신(Doxorubicin), 에피루비신(Epirubicin), 파클리탁셀(Paclitaxel) 성분은 탈모를 잘 일으킨다. 항암 치료 종료 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회복한다고 환자들에게 알리지만, 기존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의 42.3%가 항암치료 후 3년이 지나도 항암치료 이전의 모발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
연구팀은 대상자를 냉각모자군(89명)과 대조군(50명)으로 나누고 냉각모자 착용 유무에 따른 지속탈모 및 모발의 양과 굵기, 스트레스를 비교했다.
냉각모자는 머리가 닿는 부분에 매립된 관을 따라 냉각수가 일정 온도로 순환하면서 두피 열을 내리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환자들은 항암 치료 전 30분 동안 모자를 착용하고, 치료 후 90분 동안 모자를 추가로 쓴 채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에 따르면 지속탈모는 항암치료 전 보다 모발의 양 또는 굵기가 항암치료 6개월 이후 시점에도 회복이 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대조군의 52%가 지속탈모를 경험한 반면, 냉각모자군은 13.5%에서만 나타났다. 모발 두께는 치료 시작 전 보다 치료 후 6개월 지난 시점 대조군에서 7.5μm 감소한 반면, 냉각모자군은 오히려 1.5μm 증가했다. 연구 시작 당시에는 두 집단간 모발 두께 차이는 없었지만, 치료 후에는 9.1μm 차이를 보였다.
항암치료 종료 6개월 뒤 가발 착용도 냉각모자군에서 크게 줄었다. 탈모를 가리려 가발을 착용하는 환자의 비율이 대조군은 32%에 비하여 절반 수준인 17%에 불과했다. 환자들이 보고한 항암치료로 인한 탈모 스트레스도 6개월 시점에 냉각모자군이 유의미하게 더 낮았다.
안진석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 냉각모자를 착용하면 모낭 손상이 덜하기 때문에 항암치료 후 머리카락이 다시 날 때 빨리 나고, 굵은 모발이 날 확률이 높아진다”며 “탈모는 환자의 삶에 다양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부분 또한 포함할 수 있어야 암치료가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암환자를 위한 냉각모자는 미국 FDA, 유럽 EMA의 허가를 받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 암치료 가이드라인에 포함돼 실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보조적 암치료로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의료기술 등록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임상종양학회지(Journal of Clinical Onc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