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소프라노 홍혜경(65)이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많은 국민이 좋아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최영섭 작곡)을 마치자 기립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감동에 젖어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홍혜경은 노래 중간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노랫말에 담긴 그리움과 애절함을 고스란히 객석에 전달했다. 이날 공연은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 데뷔 40주년을 맞은 그가 고국 무대에서 10년 만에 한 단독 연주회다. 홍혜경은 1982년 메트 성악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1984년 제임스 레빈이 지휘한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에서 베르빌리아 역으로 메트에 데뷔했다. 한국인 최초였다. 이후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 역과 ‘투란도트’의 류 역 등 주요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며 40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메트 무대에 올랐다가도 금방 사라진 가수들이 무수한 것을 감안하면 홍혜경이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는지 짐작된다.
그는 이날 이탈리아 ‘벨칸토(아름다운 노래)’ 오페라의 황금기를 이끈 벨리니(1801∼1835)와 도니체티(1797∼1848)부터 오페레타(작은 오페라) 최고 흥행 작곡가였던 레하르(1870∼1948)의 작품까지 다채로운 곡을 들려주었다. 컨디션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특히, 첫 곡인 벨리니 ‘노르마’의 대표 아리아 ‘카스타 디바(정결한 여신이여)’를 비롯해 도니체티 ‘안나 볼레나’ 중 ‘울고 있나요? 고향의 성으로 데려다 주세요’와 베르디(1813∼1901) ‘일 트로바토레’ 중 ‘고요한 밤은 평온하고’를 부른 1부에선 약간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 1부 끝 곡인 구노(1818∼1893) ‘로미오와 줄리엣’ 중 ‘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는 아예 부르지 못했다. 지휘자 이병욱을 통해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잠시 한숨을 돌린 후 시작한 2부에선 달랐다. 여유를 찾고 나와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로서의 위엄을 보여줬다. 흰색에서 강렬한 빨간 드레스로 갈아 입고 나온 홍혜경은 레하르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 중 ‘빌야의 노래’와 ‘주디타’ 중 ‘내 입술, 그 입맞춤은 뜨겁고’, 푸치니(1858∼1924) 오페라 ‘투란도트’ 중 ‘주인님, 들어주세요!’, ‘토스카’ 중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주디타’ 아리아를 부를 땐 남성 무용수 2명과 함께 매혹적인 몸짓을 보이며 분위기를 돋웠다.
이날 공연은 그야말로 평생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홍혜경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준 무대 같았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섬세한 표정 연기와 감정 전달 등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한 그에게 관객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레와 같은 환호를 보냈다. 홍혜경은 벅찬 표정을 짓더니 힘이 났는지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라 보엠’ 중 ‘내가 길을 나설 때면’를 잇따라 불렀다.
그는 9일 예술의전당에서 공개 워크숍을 열어 젊은 한국 성악가 4명에게 자신 만의 성악 비법을 전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