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김승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2만3000원
미국에서는 3분마다 1명이 사고로 죽는다. 교통사고로 1명, 화재로 1명, 일터의 노동자가 1명…. 대형 재난이 아닌 한 이런 사고들이 사회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면 시각이 달라진다.
미국에서 흑인은 화재로 죽을 확률이 백인의 2배다. 원주민(인디언)은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을 확률이 백인의 3배, 웨스트버지니아주 사람들은 이웃한 버지니아주 주민보다 사고로 죽을 확률이 2배 높다.
책 ‘사고는 없다’는 왜 특정 지역, 인종, 계층에서 사고로 숨지는 사람이 많은지를 파고든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사고란 그저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고 못 박는다. 한두 명이 숨지는 일상적 사고 뒤에는 취약한 환경, 정책 실패, 안전에 돈 쓰지 않으려는 탐욕, 계급·인종차별, 편견 등 수많은 요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에서는 인종과 경제력에 따라 사고 피해자가 될 확률이 달라진다. 2019년 미국에서 보행사고 사망률은 백인보다 라티노가 87%, 흑인이 93%, 원주민이 171% 더 높았다. 흑인이 길에서 사망할 경우 가해자가 처벌될 가능성은 작아졌다.
실제 2015년 포틀랜드주립대 연구진이 신체조건·옷차림이 같고 인종만 다른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실험을 한 결과, 흑인이 길을 건너려고 서 있을 경우 운전자가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는 일은 백인보다 2배 많았다. 흑인 보행자는 길을 횡단하려면 백인보다 평균 32% 오래 기다려야 했다. 흑인이 길을 건너려면 더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력과 사고 발생의 관계도 유사하다. 지난 20년간 사고사율이 가장 높은 주는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뉴멕시코로, 미국에서 빈곤율 상위권에 드는 지역이다. 미국에서 보행자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은 60개 도로 중 4분의 3은 평균보다 소득이 낮은 주에 있었다.
이런 상황은 악순환을 일으킨다. 지역 경제가 쇠락하면 일하기 위해 더 먼 곳까지 차를 몰게 돼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또 절박한 상황이니 위험한 일이라도 감수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의료 빚에 시달린다. 자연히 세금을 적게 낼 수밖에 없다. 세수가 줄면 주정부는 도로를 포장하기 힘드니 다시 사고 위험이 늘어난다.
사고를 둘러싼 담론은 강자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1950년대 미국 코넬대는 자동차 충돌로 인한 손상 연구의 하나로 충돌 내구성 테스트 방식을 정교화했다. 거의 모든 충돌 테스트 인형이 175㎝에 78㎏ 정도의 남성 신체를 모델로 한 것이 문제였다. 여성에 맞는 충돌 테스트용 인형은 없었다. 그러니 여성은 전면 충돌 사고에서 사망 확률이 남성보다 최대 28%, 부상 확률은 최대 73% 높았다.
저자는 사고 증가 추세를 막으려면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방 대책은 몸이 느리고 약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이들, 즉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맞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전 관련 규제 완화로 사고가 났을 때 그 비용을 피해자 측이 아닌 기업과 규제 기관이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