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저물면 새로운 태양이 뜨기 마련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전성기도 내리막을 걷는 게 스포츠의 숙명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 트로피를 2010년대 양분한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7·인터 마이애미·8회)와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알 나스르·5회)도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유럽 무대를 떠나 주류에서 벗어났다. 이들 대신 킬리안 음바페(25·레알 마드리드), 엘링 홀란(23·맨체스터 시티), 주드 벨링엄(20·레알 마드리드)이 새 시대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지상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프로농구(NBA)도 1980년대생들이 후퇴하고, 1990∼2000년대생이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10여년간 NBA 무대를 지배한 베테랑들이 2023∼2024시즌 플레이오프(PO)에서 대거 탈락했고, 젊은 피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신예들이 우뚝 섰다.
2003년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20년간 제왕으로 군림한 제임스는 NBA 역대 득점 1위(4만474점), 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 정규 리그·챔프전 최우수선수(MVP)를 4번씩 차지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이런 그가 이끄는 레이커스는 이번 시즌 PO 1라운드에서 니콜라 요키치(29)가 이끄는 덴버 너기츠에 1승4패로 완패했다.
역대 최고의 3점 슈터 커리는 팀이 정규리그 10위에 그치며 PO 1라운드도 나가지 못했다. 챔프전 우승 4회, 역대 3점슛 1위(3747개)로 골든스테이트의 ‘왕조’를 구축하며 농구의 트렌드까지 뒤바꾼 커리에게 아쉬운 결과다. ‘득점 기계’ 듀랜트 역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PO 1라운드에서 4전 4패로 완벽하게 무너졌다. 듀랜트는 미네소타의 끈적한 수비에 반격할 틈도 없이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듀랜트는 챔프전 우승과 챔프전 MVP를 2회씩(2017·2018년) 차지했고, 득점왕에 네 번(2010∼2012, 2014년)이나 등극한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인물이다.
◆20대 슈퍼스타들로 재편
한 시대를 주름잡던 ‘릅·듀·커’ 3인방이 하락세를 보이는 사이,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영건들의 전진이 눈부신 한 해였다. 특히 이번 시즌 NBA 정규리그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를 꼽는 퍼스트팀은 모두 20대가 선정됐다. 샤이 길저스-알렉산더(26·오클라호마시티 선더), 루카 돈치치(25·댈러스 매버릭스), 야니스 아데토쿤보(29·밀워키 벅스), 제이슨 테이텀(26·보스턴), 요키치가 그 주인공이다. 79경기에 나서 평균 26.4득점, 12.4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작성한 요키치는 NBA 정규리그 MVP를 세 번째 수상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타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길저스-알렉산더는 만장일치로 퍼스트팀에 선정돼 리그 정상급 가드로 성장했다. 정규리그 경기당 득점 3위(30.1점), 스틸 2위(2개)에 오른 길저스-알렉산더는 2022∼2023시즌 10위로 하위권을 전전하던 오클라호마시티를 서부 콘퍼런스 1위로 이끌었다. 또 세컨드팀에 선정된 ‘앤트맨’ 앤서니 에드워즈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에드워즈는 듀랜트가 앞장선 피닉스와 벌인 PO 1라운드에서 4경기 평균 31점을 올리며 4승 무패로 무너뜨리는 데 선봉장에 섰다.
제임스와 듀랜트 등을 제치고 정규리그 퍼스트팀에 선정되며 리그 최상급 포워드로 자리 잡은 테이텀은 생애 첫 챔프전 트로피를 들면서 최고의 한 시즌을 보냈다. 우승에 따른 보상도 확실했다. 보스턴은 우승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한 ‘에이스’ 테이텀을 붙잡기 위해 5년간 3억1400만달러(4357억원)를 그에게 선사하기로 했다. 이는 NBA 역대 최고액이다.
아쉽게 테이텀의 보스턴에 밀렸지만, 댈러스의 ‘왕’ 돈치치도 생애 첫 챔프전 진출에 성공했다. 최근 5년 연속 퍼스트팀에 선정된 돈치치는 이번 시즌 평균 33.9점을 퍼부으며 득점왕에도 등극했다. 우승 문턱까지 도달하면서 최고의 가드다운 지배력을 보였다.
젊은피의 약진은 팀 성적에서도 드러난다. 우승을 차지한 테이텀의 보스턴을 비롯해 돈치치의 댈러스, 에드워즈의 미네소타, 타이리스 할리버튼(24)의 인디애나까지 영건들이 에이스 역할을 하는 4팀이 PO 4강에 남을 정도로 세대교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노장의 라스트 댄스·새 시대의 반란 이어진다
다음 시즌도 새 시대의 반란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노장들의 우승 반지를 향한 분투도 계속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흐름 속에서 신구 조화를 위한 움직임이 돋보인다. 커리와 함께 챔프전 우승 4회를 일군 ‘3점 기계’ 클레이 톰프슨(34)은 댈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며 2011년 데뷔 이후 13년 만에 모든 영광을 함께 했던 팀을 떠났다. 보스턴에 가로막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던 댈러스는 돈치치, 카이리 어빙 등에 더해 톰프슨까지 합류하면서 신구 조화를 이룬 막강한 공격력을 구축하게 됐다.
또 ‘베테랑 사령관’ 크리스 폴(39)은 골든스테이트를 떠나 1년 1100만달러(152억원)에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향했다. 샌안토니오엔 224㎝의 ‘신인류’ 빅토르 웸반야마(20)가 있다. 웸반야마는 지난 시즌 데뷔해 만장일치 신인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폴은 나이 차이 19살, 신장 차이 41㎝에 달하는 웸반야마와 신구 콤비를 이루며 아름다운 패스로 코트를 수놓을 전망이다. 폴의 진두지휘 아래 웸반야마가 얼마나 큰 성장을 이룰지도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