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역주행 사고' 주요장면…급발진 어긋나는 정황들

1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해차량 운전자는 일관되게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진 운전자 차모(68)씨가 고통을 호소하면서 경찰 조사는 이틀 만에야 이뤄졌다. 경찰은 사고 다음 날과 그 다음 날 두 차례 브리핑에서 차씨가 가속페달을 밟은 정황을 밝혔다. 경찰은 조만간 중간 수사 결과를 브리핑할 예정이다.

 

사고 당시부터 현재 수사 상황까지 주요 장면들을 정리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사고 현장 모습.

◆월요일 밤 귀갓길 덮친 역주행 차량에 '참변'

 

지난 1일 밤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인근 교차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오후 9시27분께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온 제네시스 G80 차량이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를 역주행했다.

 

이 차량은 BMW와 소나타 차량을 추돌한 후 인도로 빠르게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 그 뒤로도 횡단보도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보행자들을 들이받고 교차로 인근에서야 멈춰섰다. 시속 100km에 달하는 속도로 200m가량을 내달렸다.

 

이곳은 인근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먹자골목 앞이었다. 사고 현장에서 6명이 즉사하고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진 3명도 끝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시청역 인근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 직원 3명과 서울시청 직원 2명, 현대 C&R 소속 주차관리요원 3명 등이다.

 

사망자들은 모두 중장년 남성으로 영등포병원 장례식장과 국립중앙의료원,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사망자 6명의 시신이 안치된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유족들은 신원을 확인하고 오열했다.

 

운전자 차씨와 동승자인 아내도 부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으로 옮긴 직후 실시한 음주와 마약 측정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이들은 사고 직후 지인 및 언론과의 통화에서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관할 파출소 경찰관이 순찰을 하고 있다.

◆사고 다음 날 첫 경찰 브리핑…"급발진 진술 없어"

 

경찰은 차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그는 경기도 안산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시내버스 기사로 운전 경력이 40여년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다음 날인 2일 진행된 브리핑에서 경찰은 "급발진의 근거는 현재까지는 피의자 측 진술뿐이고 급발진이라고 해도 적용 혐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진 질의에서는 "경찰 조사관한테 정식으로 진술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새벽 차씨의 동승자인 아내와 딸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아내는 경찰에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차씨가 갈비뼈 골절로 말하기 힘들어 해 정식 조사는 진행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브리핑 당시 별도의 목격자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에서 여러 CCTV 자료와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며 "현재 운전차량 동선 등을 파악하고 확보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차량 사고기록장치(EDR) 감식도 의뢰했다.

 

경찰은 운전자 부부가 사고 직전 부부싸움을 해 홧김에 사고를 일으켰다는 루머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보도로 사실 왜곡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유의 부탁드린다"는 입장문을 냈다.

 

블랙박스에는 "어, 어" 목소리만 담겼을 뿐 역주행 이유나 급발진 여부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은 사망자들의 빈소가 차려진 날이기도 하다. 희생자 9명은 서울 영등포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분산돼 안치됐다.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전날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 교통사고 현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있다.

◆'급발진' 아닌 정황 속속…스키드마크 혼선도

 

지난 3일 진행된 두 번째 브리핑에서 경찰은 "차량이 호텔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나와 약간의 턱이 있는 출입구 쪽에서부터 과속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제네시스의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한 경찰은 차씨가 사고 직전 가속페달(액셀)을 강하게 밟았으며, 브레이크를 밟은 정황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에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으면 생기는 스키드마크(Skid mark)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초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마지막 정차 지점에서 스키드마크가 남아있는 것을 확보했다. 스키드마크는 기본적으로 제동장치가 작동됐을 때 남는다"고 했으나 30분 후 이를 뒤집었다. 사고 차량의 부동액과 엔진오일 등 유류물을 스키드마크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사고 후 이틀이 지나도록 피의자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담당 의사로부터 차씨의 건강 상태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며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아 정식 조사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몸 상태가 호전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시청역 돌진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신한은행 직원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사고 사흘 만에 피의자 신문…희생자들 눈물의 발인

 

경찰의 정식 피의자 조사는 사고 사흘 만인 4일에야 이뤄졌다. 남대문경찰서는 차씨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에 조사관 4명을 보내 2시45분부터 4시50분까지 조사를 진행했다.

 

차씨는 이 자리에서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차량 상태 이상에 따른 급발진을 재차 주장했다고 한다.

 

한편 경찰이 신청한 체포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피의자가 출석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거나, 체포의 필요성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날 오전에는 희생자들의 발인식도 있었다. 직원 4명이 사망한 시중은행에서는 동료 100여명이 장례식장 앞에 도열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시청 직원 2명의 운구행렬은 서울시청에 들렀다.

 

◆운전자 '회피 시도했나' 수사 초점

 

경찰 수사 단계에서 급발진 여부를 명확히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접수된 급발진 신고 236건 중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국과수에서 EDR 분석 후 급발진을 인정한 적도 전무하다.

 

이에 따라 운전자가 사고 상황에서 '회피 시도'를 했는지가 향후 수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는 그대로지만 브레이크를 밟거나 회피 핸들링을 했다면 감형의 양형사유가 된다.

 

교통사고처리법은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교통사고 치사 사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징역 8월~징역 2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다만 차씨가 인명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한 점이 인정되면 양형기준에 따라 선고되는 형량은 더 낮아질 수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