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에잇쇼’는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1층에서 8층까지 자발적으로 수감된 여덟 명은 파벌을 만들어 서로를 기만하고, 폭력을 동원해 인간성을 말살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행해졌던 생체실험이 게임 참가자의 경쟁에 동원될 정도로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극한 경쟁의 생생한 메타포인 셈이다.
이 메타포는 저출생 고령화, 이념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우울감 급증, 승자독식의 문화와 같은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국가, 사회적 위기의 징후들이다. 위기의 순간이 온 만큼 더 엄중하고 치열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석학이 탄식하듯 ‘한국은 완전히 망했어’라는 식의 숙명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식의 냉소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닥쳐올 더 큰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젊은 세대가 좌절과 냉소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생체실험이 버젓이 벌어지는 콘텐츠를 현실과 혼동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20~30년 전과 비교할 때 우리의 삶은 비교가 무색할 만큼 윤택해졌다. 소득은 크게 올랐고 정치는 안정됐다. 스마트폰이 삶의 표준이 됐고, 챗GPT 덕에 시공간을 초월해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며 살고 있다. 배기가스도 줄었고, 대중교통은 편리해졌으며, 체벌이 사라졌고, 욕설과 고함이 가득하던 직장은 평화로워졌다.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고 술주정을 부리는 사람은 찾기 어려워졌고 살인 상해와 같은 범죄도 훨씬 줄었다. 이렇게 우리 삶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갈등도 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시민과 동료에 대한 믿음이 결국 중요한 이유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이타적 동기와 선한 본성, 그리고 합의 추구적 태도를 갖는다는 믿음에서 출발할 때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기적 행동뿐 아니라 이타적 행동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발견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중요하다. 실제 피해를 감수하며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고 선행을 실천하는 동료 시민들이 우리 주위엔 많다. 젊은 세대가 미래를 긍정하고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고함과 조롱과 욕설이 난무하는 국회를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든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은커녕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고 호통치고 저주하는 모습들을 보면 정치는 희망이 아니라 나락의 늪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나라는 선진국인데 정치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어른들이 몸싸움과 언어폭력에 빠져 있는데 청소년들인들 학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저자 스티븐 핑커는 인간 내면의 악마를 제압하고 선한 천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해결책을 사회제도에서 찾았다. 법과 제도, 국가 정책이 바로 서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문화가 확립될 때 자기통제와 공감이 커지고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봤다. 아무리 사회구성원이 서로를 신뢰하고 상호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간들 국회와 정치권이 혐오의 언어와 몸짓으로 악한 본성을 깨워 일으킨다면 우리의 미래 시계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신뢰, 이타성, 합의에 이르려는 태도, 이런 덕목들이 존중될 때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 가능해진다. 이념과 세대, 성을 넘어 공존을 위해 더 나은 ‘협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될 수 있다. 초경쟁, 초개인주의가 규범이 된 세상 속에도 시민 개개인의 마음가짐 속에는 항상 ‘우리’가 있다. 리얼리티 쇼를 봐도 승리에 도취하고 으쓱해지는 모습 대신, 상대에게 미안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출연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경쟁도 결국 협력의 과정이라는 진리를 일반 시민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저출생 위기로 대표되는 국가적 위기를 마주하며 정치인과 국가 리더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호통과 저주, 혐오로 서로를 갉아먹고 앞장서 신뢰를 붕괴시키는 파멸적 행동을 멈춰야 한다. 정치권과 국회는 우리 사회의 거울과도 같다.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괴물이라면 선한 시민마저 스스로를 악하다고 믿게 된다. 시민 동료에 대한 믿음을 정치권이 앞장서 실천해 주길 기대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