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 않자 또 물러선 정부… “환자들 고통 커 불가피”

정부, 미복귀 전공의 행정처분 방침 철회

5일 기준 출근 전공의 7.9% 불과
한 달 전과 비교하면 고작 79명 ↑

사직 전공의 복귀 제한 규정 완화
지방서 수도권 병원 쏠림 우려도

전공의, 의대 증원 백지화 등 요구
실제 복귀할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방침을 철회하면서 5개월 가까이 삐걱대던 의료 체계가 정상화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조치는 전공의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패키지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실제 얼마나 많은 전공의가 복귀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의료계 집단행동에 또다시 면죄부가 주어지면서 법과 원칙을 강조한 정부도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법·원칙” 강조 정부, 또 물러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브리핑에서 수련 현장의 건의사항과 의료 현장 상황을 고려해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에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4개월여간 여러 유화책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자 정부가 또다시 ‘당근’을 꺼내 든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4일 전공의와 수련병원 등에 내린 사직서수리금지 및 업무개시 명령 등을 모두 철회하고, 복귀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5일 기준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는 전체의 7.9%인 1092명에 불과했다. 명령 철회 직전인 지난달 3일(1013명)과 비교하면 79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조규홍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및 전공의 관련 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정부는 이번 사태 초기부터 ‘기계적인 법 집행’을 강조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강경 대응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고,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1조원에 가까운 재정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할 조짐이 없자 또다시 한발 물러서면서,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그런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현장 의료진 부담과 중증 질환 등 환자분들의 불편·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이를(이러한 입장을) 갖고 가는 것은 너무나 부담이 커, 불가피하게 저희가 그런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전공의 “달라질 것 없다” 반발 여전

정부는 이번 조치로 전공의들의 사직·복귀 여부가 확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각 수련병원은 이를 통해 9월1일부터 수련 과정에 들어가는 하반기 전공의를 22일부터 모집할 계획이다.

 

수련병원들은 통상 3월1일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전공의 중 개인 사정으로 중도 포기하거나, 상반기 미달한 진료과목의 전공의를 하반기에 모집했기에 9월 모집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 모집인원은 인턴 114명, 레지던트 614명 등 728명이었다.

올해는 전공의 90% 이상이 이탈한 상황이라서 모집 규모가 상당히 커질 전망이다.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아직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평년보다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을 중지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사직한 전공의에 대한 동일연차·과목에 대한 금지 규정을 일시적으로 폐지하는 특례 규정까지 제시했다. 사직서가 수리된 전공의들은 다른 병원으로 지원도 가능한데, 지방 전공의들이 ‘빅5’ 병원 등 수도권 병원에 지원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한 의대 교수는 “지방에서 수련하던 전공의 중에서는 실제 이 기회에 서울로 가려는 인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정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지방 병원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지방 전공의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전공의들이 실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의사 커뮤니티 등에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여전히 냉소적인 반응이 많다. 한 전공의는 “뭐가 달라진다는 건지 모르겠다. 계속 버티겠다”고 썼고, 또 다른 전공의는 “모르겠고, 일단 2월 사직서부터 처리하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이 하반기 모집에 지원하려면 사직서가 먼저 수리돼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사직 시점은 사직서를 제출한 2월”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각종 명령을 철회한 6월4일이라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사직 시점에 대한 질문에 “병원과 전공의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는 정부가 일일이 알 수 없는 복잡한 법률관계가 있다”며 “그것은 당사자들 간의 협의에 의해서 결정될 사항”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