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복귀 전공의 행정 처분 중단에도 '심드렁'… "'철회' 아닌 '취소'해야"

34개 의대 교수들 9일 입장문 발표 "2025학년도 의대 증원도 재검토해야"
대한의학회 "사직 전공의, 하반기 지원 허용 땐 의료현장 대혼란"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모두 철회했지만 의료계 반발은 여전하다. 34개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들은 “행정처분을 ‘취소’하고 2025학년도 증원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대한의학회는 “사직 전공의의 하반기 지원을 허용하면 의료현장에 대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관계자가 전화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성모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의대 교수비대위 김성근 대표 등 34개 의대 교수들은 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2020년의 9.4의정합의를 무참히 깨버린 윤석열정부의 일방적인 의대증원 정책 추진으로 인해 비롯된 의료농단 사태가 길어지면서, 불편과 불안감을 겪고 계신 국민 여러분께 먼저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5가지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교수들은 먼저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여부에 상관없이 행정처분 철회하겠다’는 전날 정부 발표에 대해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업무 개시 명령’ 행정처분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법에서 보장하는 국민 기본권 중 하나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조치였다”며 “애초에 반헌법적 행정처분을 시행해 놓고, 이제 와서 전공의들에게 선심을 베푸는 듯 여론을 호도하고, 마치 큰 결단을 내린 것인 양 위선적 태도를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행정처분 철회라는 꼼수 대신에 지금이라도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은 취소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직서 수리 시점’에 대해선 “애초에 위법적인 사직서수리금지명령을 내렸던 정부가 이제 스스로에게는 셀프 면죄부를 발급한 채 병원과 전공의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선언인 바, 이는 매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주먹구구식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2000명 의대증원’이라는 맹목적 과제에만 매달려 전대미문 의료농단 사태를 일으킨 정부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지 않는가? 이제라도 사직서 수리금지라는 기상천외 행정처분을 취소하거나 애초에 무효였음을 고백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한 대학병원 복도에 환자용 휠체어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전공의 수련 특례 사항으로 재수련 제한 완화 발표 및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나선데 대해서는 “지방 병원 전공의들을 수도권 병원으로 유인하여 충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바, 지역필수를 살리겠다 공언한 정부로서 취해야 할 조치가 아니다”며 “사직 후 9월 미복귀자에게는 수련 특례가 없다고 발표한 것은 이번 특례 조치가 명백히 전공의들을 갈라치기하고, 현 사태를 임기응변으로 땜질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문의 시험도 마음대로 추가하겠다는 복지부의 끝없는 미봉책 나열은 의대교수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있다. 복지부는 편법적인 대응책을 쏟아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전날 브리핑에서 “8일부터 대학별 재외국민 전형에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2025년도 의대증원을)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언급한 데 대해선 “8일부터 재외국민 ·외국인 특별전형이 시작된 것은 맞지만, 재외국민전형은 정원 외 모집인원”이라며 “9일부터 원서를 접수하는 동국대와 을지대 4명을 제외하면 재외국민 전형은 25명에 불과하다. 법원 결정문과 청문회를 통해 알려진 대로 65% 증원(2000명 증원시), 50% 증원(1500명 증원시)은 근거도 없었고 논의나 합의조차 없이 깜깜이로 진행되었던 바, 2025년도 증원안부터 다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아울러 교육부가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 데 대해서는 “의대 졸업 후 의원을 개원해 4년을 근무했으면 4년을 다 경력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이고, 개업의를 당장 의대 교수로 뽑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교육부가 이렇게 의학교육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3년간 국립대 의대 교수를 1000명 늘리는 계획에 억지로 짜맞추기 위해서 의학교육의 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교육부는 앞에서는 ‘의료계와 논의를 통해 접점을 찾고, 의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의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개정령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당장 교육부는 입법예고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대한의학회도 이날 “복지부는 어제(8일) 발표한 장관 브리핑에서도 여전히 행정처분은 ‘취소’가 아니고 ‘철회’라고 하였고, 2월에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직서의 처리는 병원과 전공의 당사자 간의 협의에 의하여 결정될 내용이라며 병원에 그에 대한 책임을 떠넘겼다”며 “이는 이전의 발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며, 이러한 전제조건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2024년도 하반기(9월) 전공의 모집 시에 사직전공의들의 지원을 허용하는 것은 의료현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의학회는 이어 “현 상황에서 2024년 하반기 전공의 선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모든 전공의가 원래 있던 병원을 지원하는 경우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사직에 대한 각 병원의 입장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하반기 지원을 급작스럽게 결정하는 경우 전공의뿐 아니라 병원에서도 선발과정에서 실제적인 혼란과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선발이라는 것이 공정성을 담보로 해야 하는데 졸속으로 처리하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며 “또한 이 결과로 일부 전공의가 돌아오는 상황을 기대할 수는 있으나, 이는 의료정상화를 위하여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며, 현재 상황에서 지방전공의 또는 소위 비인기과 전공의가 서울의 대형병원 또는 인기과로 이동 지원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으며 이 경우 지방 필수의료의 파탄은 오히려 가속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학회는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 주기를 충심으로 요청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