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인당 왜 25만원만 줍니까. 한 10억원씩, 100억원씩 줘도 되는 것 아니에요?” 지난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전 국민 25만원 지원’을 빗댄 말이다. 대통령의 말치고는 가벼워 보이지만 건전 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가 재정이 위기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달러를 찍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 미국도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우리는 오로지 세수와 예산으로만 재정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들어오는 돈이 줄면 씀씀이를 줄이는 게 당연하다.
재정 전문가인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현 정부가 세입에 대한 안이한 판단으로 재정지출 규모를 적극적으로 줄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퓰리즘적 재정운용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이른바 ‘재정의 정치화’가 재정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만시지탄이지만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그에 합당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도리”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4일 이뤄진 일문일답.
―현재 재정상황은 어떤가.
“100조원대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5년째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적자 평균이 99조원이다. 문재인정부 3년, 윤석열정부 2년이다. 올해 세입결손에다가 기금, 적립금까지 다 소진했다. 2022년 예산은 문재인정부에서 짰지만 현 정부가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해 추경으로 100조원을 쓴 게 문제였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예산에서 92조원이고 지난해 87조원이다. 87조원을 기준으로 보면 GDP 대비 3.9%다. 2년 동안 대규모 세입결손을 안고도 지출감축을 안 한 건 의지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재정의 역할을 감안하면 확장재정의 필요성은 없나.
“가계부채 문제나 환율 폭탄에도 한국은행이 고강도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게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려는 게 아니다. 사이클 후반기에 와 있는 물가의 불씨를 완전히 꺼야 한다. 그게 글로벌 추세다.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에 긴축금융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 이럴 때 확장재정은 고금리 기간만 늘리는 꼴이다.”
―긴축 재정이 맞는 방향인가.
“그렇다. 코로나19 시기 방만하게 늘어난 100조원대 적자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게 급선무다. 문재인정부 평균 재정적자가 100조원이다. 고유가 시대에도 유류·전력 소비가 줄지 않았다. 금리비용 증가로 유동성을 줄이면서 경제주체가 소비를 통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성급하게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효과도 없고 고통만 늘릴 뿐이다.”
―세금을 더 걷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나.
“긴축재정은 총량은 안정적으로 가되 구성을 달리해야 한다. 고금리 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건 서민이다. 취약계층 위주로 타격을 직접 받는 부분에 예산을 늘려야 한다. 그렇다고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100조원의 대규모 증세는 불가능하다. 소득세 규모의 세목을 하나 만든다는 건 정치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반짝호황으로 갑자기 세수가 늘어날 리도 만무하다. 지출 감축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출 증가로 국가채무는 늘고, 세입은 줄어드는 이른바 ‘악어의 입’만 점점 커질 것이다.”
―재정역할 축소 우려도 있다.
“지금 재정은 큰 전환기에 와 있다. 5년 연속 재정적자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재정은 따져보면 총량과 관계없다. 룰을 만드는 게 정부다. 나쁜 걸 만드는 걸 규제라고 하지만 예산은 내려주는 것이다. 정부 역할이 크게 축소하는 건 아니다. 시의적절한 배분과 필요성만 높이면 정부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다.”
―야당의 재정 근간을 흔드는 법안은 어떤가.
“추경편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나 민생지원금 특별법은 문제가 많다. 예산편성은 행정부 고유권한이다. 심판이 선수를 빼고 직접 뛰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례적 지원을 특별법 형식으로 통과시키는 건 헌법적 질서와 충돌된다. 많은 후유증을 남길 게 뻔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이 있나.
“서민생계 지원이나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필요성이 느닷없이 7∼8월에 생기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정부의 일상적·항구적 정책목표다. 지진이나 홍수 등 재난상황이나 대규모 금융위기 등 비상시를 제외하고 갑자기 민생을 지원할 이유는 없다. 연금법·기초생계법 등 시스템 차원에서 매년 투입되는 것과는 다르다.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을 두고 여야가 열심히 심의하고, 정부가 피드백해서 예산에 담아내야 할 부분이다.”
―지방재정교부금 활용도 필요한가.
“그렇다. 고령화로 인한 복지수요 증가로 지출을 줄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경직적 재정구조를 해소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표적인 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재정수요에 맞게 배분돼야 하지만 국세수입에 자동연동돼 있다 보니 괴리가 커졌다. 지난해 교부금 일부를 대학교육과 평생교육으로 지원하도록 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자체 예산과 지방 교육재정을 통합하는 미국식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렇게 되면 지역별로 학생 수요에 맞춰 효율적 예산집행이 가능하다.”
―정부 지출 줄이는 게 왜 어렵나.
“재정의 정치화 때문이다. 미국 대선이나 프랑스 총선, 영국 총선 등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전 세계적 현상이다. 영어로 ‘political feasibility’라 부르지만 우리는 흔히 ‘정치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 돼 버렸다. 포퓰리즘적 재정 운용으로 국민의 지지를 구하려고 한다. 정책효과를 면밀히 따져보지도 않는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더라도 여당 역시 겉으로는 반대하지만 경쟁을 벌이는 입장에서 선뜻 외면하기 힘들다.”
―재정준칙 법제화 필요성은.
“반드시 필요한 국제규범이다. 우리보다 선진화 정도가 떨어지는 나라도 채택하고 있다. 만시지탄이다. OECD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중 우려스러운 부분이 경제성장률과 재정이다. 거시경제의 견조한 성장세는 국가 간 경쟁이다 보니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재정은 다르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복지수요가 급증하는 건 예측가능한 쓰나미다. 재정이 미리 준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재정준칙은 최소한의 법제적 장치다.”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재정준칙을 법제화한 후 준수 여부는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된다. 준헌법적 위치를 부여하기 위한 개헌도 어렵고, 현 국회구조상 특별법도 힘들다. 국가재정법에 조항을 넣어 법제화하는 게 실현가능성이 높지만 특별법에 준하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물론 지키지 않았다고 처벌할 수는 없지만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더욱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재정준칙이 보수정당의 전유물은 아니다. 대통령실과 여당, 기획재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야당을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