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리튬 진압 집중했으면 더 큰 참사…드라마에 나올 만한 화재”

‘화성 배터리 화재’ 박철완 교수 인터뷰

화재 초기부터 염화싸이오닐 위험성 경고
“아리셀 사고는 배터리 아닌 화학물질 사고”
열폭주 동반하는 전기차 배터리와는 달라
현장 출동 소방·경찰관 등 건강 체크 필요
“드라마에 나올 만한 특수한 화재였다. 소방관들이 진압하기에 초고난도인 사고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난달 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염화싸이오닐(염화티오닐·SOCL2)의 위험성을 초기부터 경고했다. 박 교수는 지난 1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번 화재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고”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가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배터리 종류가 다양해진 만큼 화재 유형도 예측 불가”라며 “정확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와 함께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제현 선임기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의 과학부문 전문위원,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 산업 전환분과 민간위원 등을 지낸 박 교수는 1993년부터 군용 리튬전지 개발 연구를 했다. 그는 “대학원 들어갔더니 랩에서 국내 최초의 리튬계 이차 전지 개발 과제를 따놨다. 위험하다고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아리셀 화재 사건과 직결되는 리튬염화싸이오닐 전지 개발 과제였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산업기술 분류 체계에서 전지를 중분류로 격상시키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일·이차전지를 숫자 1차·2차로 표기하지 않은 이유는 용어의 차별화와 병렬적인 연계성을 위해서였다. 숫자로 쓰면 일차전지가 핵심이고 이차전지는 보조 배터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며 “한글 표기는 교과서에서 방정식을 배울 때 일차방정식, 이차방정식으로 배우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웃어 보이며 말했다. 다음은 박 교수와 일문일답.

 

―화재 초기 보도를 보고 배터리 화재가 아닌 화학 물질 사고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점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화재 현장에서 연기의 형태, 연소된 모양이 너무 이상했다. 화재 현장이 공장이라는 점, 두 번째로 포장하는 층이었다는 점, 세 번째 소리가 났다는 점을 보고 업체를 찾아봤다. 아리셀이 생산하는 제품을 확인하고 무조건 염화싸이오닐이 방출될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 화재는 리튬 진압에 집중하는 순간 더 큰 참사로 간다고 봤다.”

 

―아리셀 공장이 취급한 배터리와 전기차 등에 쓰이는 배터리의 차이점은

 

“첫 번째 차이점은 일차전지와 이차전지의 차이다. 리튬계 일차전지는 전부 리튬금속일차전지다. 리튬이온일차전지는 없다. 리튬이온시스템은 모두 이차전지다. 일차전지는 일회용 전지다. 처음에 만들어진 대로 사서 쓰고 용도가 다거나 용량이 다 쓰게 되면 버리는 것이다. 반면 리튬이온이차전지는 충전해서 쓴다는 특징이 있고 전기차나 정보기술(IT) 모바일 기기에 쓰인다.”

 

“이번 화재에서 문제가 된 전지는 리튬염화싸이오닐이라는 계열의 일차전지다. 이 전지들은 에너지 밀도가 상당히 높은 최고 성능이다. 또한 사용하지 않고 보관하는 동안 용량이 떨어지지 않고 살아있다. 특수한 전지인데 유독물질이 들어가는 장치다. 그래서 군용이나 원격 전력량 검침기 등에 사용된다. 실제 전쟁이 났을 때 충전을 못하는 상황에서 무전기 등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손댈 일이 거의 없는 전지다.”

 

―화재 진압 당시 소방당국은 완전 연소까지 기다렸다고 밝혔다. 초기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이 사고는 아주 특이한 사고다. 이 사고의 대상이 된 리튬염화싸이오닐 일차전지 사고는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간혹 군용 무전기 사고가 일어나지만 무전기 하나의 배터리팩 문제 정도였다. 그만큼 대응법이 없는 사고였을 것이다. 이 전지를 안전의 관점에서 볼 땐 리튬보다 염화싸이오닐이라는 무기용매의 유출에 주목해야 한다. 이 용매는 불에 노출되면 타지 않고 기화돼 대기 중으로 퍼지다 주변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염화싸이오닐이 퍼지기 전에 빠르게 출수해 화재를 진압해야 했다.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기 때문에 소화전을 빠르게 확보해 대량의 물을 뿌려 열에 노출되는 전지의 개수를 줄였어야 한다. 다만 화재가 2시간 정도 지나 염화싸이오닐이 유출된 상태였다면 물을 쓰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물과 만나면 독성가스인 염화수소(HCL)와 이산화황(SO2)으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 이후에는 염화싸이오닐의 잔존량을 체크해 예상 소실량을 확인해 대응 전략을 짰어야 한다. 반면 소방당국은 전기차 배터리 화재, 리튬이온이차전지 화재 대응 프로토콜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불이 쉽게 꺼지지 않으니 차라리 충분히 태우자는 케이스다. 이 전지만의 별도 대응 프로토콜을 갖고 대응해야 했다.” 

 

―리튬이온이차전지에서 경고하는 열폭주 현상은 없었던 건지

 

“흔히 열폭주가 일어난다는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는 팩 구조다. 전지들이 아주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구조인데 불이 나면 열이 전이돼서 열폭주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열폭주는 팩 구조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아리셀 공장 화재 관련 폐쇄회로(CC)TV를 보면 셀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열이 옆의 셀로 전이되지 않았을 것이다. 열폭주는 이 케이스에 적용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판단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초기에 진압 시도를 못했기 때문에 불이 커지고 불 속에 셀이 방치됐다. ‘펑’ 소리가 연쇄적으로 났다고 하는데 셀이 열리는 소리로 추측된다. 셀이 열린 만큼 염화싸이오닐이 기화됐을 것이다”

 

―염화싸이오닐 확산 가능성을 경고했는데 염화싸이오닐을 흡입하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염화싸이오닐은 인체의 점막에 닿으면 화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기화된 염화싸이오닐을 흡입하면 숨을 못 쉬게 되고 패닉이 온다. 그래서 희생자분들은 다른 화재 상황보다 탈출하기 아주 어려워졌을 것이다. 기화된 염화싸이오닐은 인근에도 퍼진다. 다행스러운 일이 5~6일 만에 비가 왔다. 상대적 저농도로 흩어져 있었을 염화싸이오닐이 비가 와서 씻겨 내려갔다. 대응이 미비했던 점은 안타깝지만 자연이 살려줬다.”

 

―독성물질이 퍼졌다면 주변에 있던 소방관과 경찰관 등에 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 당시 사진을 보면 소방관, 경찰관조차도 연기가 나는데 마스크를 안 쓰거나 일반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방·경찰관들 상대로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검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히려 독립호흡이 가능한 산소 탱크를 차고 진입한 분들은 괜찮을 수도 있다. 그런데 주변에 오래 머무르면서 마스크만 쓴 분들은 건강 체크를 해봐야 한다. 염화싸이오닐을 장기 흡입한 상황이 아니지만 급성으로 호흡했을 때도 개별 건강 상태에 따라 인체에 영향을 줄 수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검진은 받아 봐야 한다.”

 

―아리셀 공장 화재 사후 대처로 여러 예방·대응 방안이 나오고 있다. 사후 대응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전지 종류와 사용되는 양상이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유형의 화재가 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예방도 중요하지만 화재 현장의 상황이라든지 특성을 보고 맞춤형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배터리의 유형마다 정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와 협력할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염화싸이오닐전지는 완전히 별도로 분류해서 관리할 필요도 있겠다. 리튬전지 관련 대응 방안으로 특수약재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수 약재 준비가 어려운 이유는 약재 역시 화재의 규모만큼 필요하기 때문이다. 열에너지가 큰 배터리 화재는 대부분 규모가 크다. 결국 가장 값싸고 많이 구할 수 있는 소화제는 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