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보고 싶어서 어두워지는 마당가 서성인다. 진초록 잔디 위에 하얗고 둥근 것들이 흩어져 있어. 이 여름에 눈뭉치는 아닐 텐데, 뭘까? 개털이구나. 온몸 뒤덮고 있던 길고 빽빽한 털이 빠지고 새로운 털이 생겨나는 털갈이 중이래. 무더위를 대비하여 스스로 여름용 털로 바꾸는 거라는데, 개를 만져보니 절반 이상 짤막하고 반지르르하며 훨씬 새하얀 털이 났네.
올여름 네게도 어떤 변화가 있었니? 난 해남 땅끝마을에 왔어. 이곳은 한반도 최남단으로 서울에서는 천 리 길이지. 유월, 칠월 두 달쯤 여기 토문재에 머물 예정이야. 토문재는 전통 한옥의 창작 공간인데, 지금은 박병두 촌장님 부부, 세 분의 입주작가 그리고 세 마리의 영리한 반려견 문돌이, 재돌이, 허돌이가 있어.
오늘 낮엔 해남읍에서 13인의 다정한 언니와 여동생이 오셨어. ‘해남여성의소리’ 회원분들이야. 그 모임 일원이기도 한 전라남도교육청해남도서관 박은정 관장님이 보름 전에 나한테 연락을 해오셨거든. 그분들이 지난달부터 ‘고정희 시전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시가 쉽지 않아서 내게 도움을 청해본다고 하셨어. 나는 잠시 망설였지. 내가 고정희 시인의 시 세계를 주제로 학위논문도 썼지만 정작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자신 없었거든. 내 삶을 고정희 시인의 치열한 삶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러웠어. 고정희 시인은 시작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에도 적극 앞장섰던 아름다운 사람이었잖아. 그분은 1948년 해남에서 태어나 43세의 길지 않은 생을 마칠 때까지 10권의 시집을 출간하셨어. “어떤 사람은 태어나 자신의 ‘이전과 이후’로 그 사회를 변화시켜 놓는다. 고정희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 여성시는 고정희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갈라지는 새로운 경계를 그었다. 여성적(feminine) 시와 여성주의적(feminist) 시로 경계를 그은 것이다. 그것이 그녀 문학의 역사성이다. 그녀 없이 20년이 흘렀는데 ‘그녀 없이’라는 말은 어쩌면 아이러니거나 모순어법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고정희 사후 20여 년 동안 그녀의 언어는 한 번도 사멸한 적이 없으며 살아 움직이는 운동력을 가지고 활동해 왔으며 하나의 알뿌리로 묻혀 줄기가 자라고 이삭이 패고 그 이삭에 풍성한 알곡이 맺혀 왔으니 말이다. 그것이 그녀 문학의 현재성이다”라고 고정희 시전집에 김승희 시인은 적어두셨어.
우리 마음의 봇물이 터졌는지 억눌렀던 속엣말도 쏟아졌어. 김양식업을 하는 이, 교사, 꽃집 주인, 영양사, 도서관장, 작가 등 하는 일도 패션도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고정희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어. 우리는 토문재 북카페에서 두 시간 넘게 마주 보며 진지하고 활기차게 시와 삶을 이야기했어. 어떤 시는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에 관해 질문하시는 분도 계셨어. 시를 이해하려면 그 시인의 삶과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도 토론했지. 자발적인 모임이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기쁨이 샘솟고 웃음소리 가득했어.
김이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