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염. 동그란 귀. 긴 주둥이.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는 갯과 야생동물 너구리다.
13일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6∼10월 서울 은평구 녹번동, 강남구 대모산, 중랑구 봉화산, 성동구 서울숲 등 59개 지역에 센서 카메라 203대를 설치해 관찰한 결과 25개 자치구 중 24개 자치구에서 너구리가 포착됐다.
서울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한 너구리도 2018년 49마리에서 작년 80마리로 63.3% 증가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야생동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산지와 구릉의 너구리 서식밀도는 2018년 1㎢당 3.3 마리에서 작년 1㎢당 2.8 마리로 줄어들었는데, 개체수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일부 너구리가 산지와 구릉에서 도시로 넘어왔다는 뜻이 된다.
도심공원은 너구리의 터전이 됐다.
지난 11일 찾은 양천구 서서울호수공원에서는 곳곳에 '너구리가 살고 있어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여주듯 어렵지 않게 너구리를 만날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공원을 탐방하는 동안 마주친 너구리는 8마리.
이들은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흔한 듯 1m 이내 거리까지 접근해도 도망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정자 밑에 누군가 놔둔 고양이 사료를 먹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공원에 종종 산책하러 온다는 조모(73)씨는 "여기 오면 먹을 게 있다는 걸 아니깐 너구리가 모인다"며 "고양이 사료를 놔두는 공간에 와서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도 지난 3월 발표한 '서울 도심지 출몰 야생 너구리 실태조사 및 관리 방안' 보고서에서 "고양이 먹이터가 설치된 구간에서 너구리 촬영 빈도가 높았다"며 너구리가 고양이 사료를 주요 먹이원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결국 너구리가 도심으로 모이게 된 이유는 생태계 파괴로 기존 서식지에서는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졌지만, 도심에서는 인간의 개입으로 굶주리지 않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멧돼지와 까마귀류 등에게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고서는 "불법개발과 벌채 등은 기존 자연생태 서식지를 파괴해 환경을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하는 너구리의 도심지 내 유입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의 너구리 서식밀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보건과 생태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너구리 행동권이 0.4∼0.8㎢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식밀도가 높을 경우 영역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새끼 너구리는 생후 9개월이면 어미로부터 독립하는데, 도심의 경우 이동하는 과정에서 로드킬을 당할 수도 있다.
또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와 접촉하면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고, 2013년 이후 발병 기록은 없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인 광견병이 전파될 수 있다.
뇌염과 신경 증상 등 중추신경계 이상을 일으키는 광견병은 치사율이 높은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개입으로 너구리 생태계를 교란해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서울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도심 너구리 출몰 빈도를 낮추려면 산림과 하천 등 주요 서식지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먹이원 관리를 위해 캣맘 등록제 등을 도입해 길고양이 급식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인간이 너구리에게 가하는 자극, 대표적으로 먹이 주기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너구리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에게 강한 공격성을 보이기 때문에 실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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