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뒤 쌍둥이 임신 확인 30대… 길병원, 미숙아 출산 도와 ‘훈훈’

임신 33주차 이르게 세상 나와 폭풍성장 중
이길여 총장 “세 모녀 희망 갖고 정착하길”

지난달 4일 오전 인천의 가천대 길병원에 119구급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여나 앞둔 30대 산모를 받아줄 수 있냐는 문의였다. 이 여성은 전날 오후 11시쯤 양수가 갑작스럽게 터져 많은 시간이 지체된 상태였다. 당시 거주지인 경기 부천시 인근 의료기관을 여러 차례 수소문했지만 야간인데다 임신 당뇨가 있는 고위험군에 속해 긍정적인 회신이 돌아오는 곳이 없었다. 더욱이 뱃속에는 쌍둥이가 있었다.

이길여 가천대 총장(가운데)이 지난 11일 길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을 찾아 최근 쌍둥이를 출산한 탈북민 산모(오른쪽부터 세 번째)를 만나 격려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그렇게 한참이 흘러 결국 119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급히 가천대 길병원으로 옮겨졌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산부인과 김석영 교수가 집도를 맡았다. 수술실 밖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돌아왔다. 1.68㎏, 1.64㎏ 자매가 밝은 세상과 만나는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린 김수연(가명·37)씨는 나흘 만에 퇴원했고, 임신 33주차에 이르게 태어난 미숙아들은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돌봄을 받는 중이다. 7주가량 치료로 2.4kg까지 성장했다. 조만간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14일 가천대 길병원에 따르면 조산의 힘든 시기를 겪은 김씨는 탈북민이다. 올해 4월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퇴소해 부천에 둥지를 마련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북한에서 넘어왔고 한 달 뒤 의료기관에서 검진 중 쌍둥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임신 상태로 삶을 향해 생사의 선을 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굳건하게 지켜낸 생명은 대한민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전망이다.

 

김씨는 한국 국민 자격을 취득해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홀로 양육을 담당하고 당장에 경제적으로도 녹록지 않아 가천대 길병원이 산모와 아기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이길여 가천대 총장은 쌍둥이가 입원 중인 장소를 직접 찾았다. 35년 전에 네 쌍둥이를 출산시켜 건강한 사회인으로 만든 경험이 있는 병원 설립자인 이 총장은 “혼자 몸으로 쌍둥이를 기르려면 힘들텐데 앞으로도 아이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격려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산모와 미숙아의 국가 의료비지원 제도 외 진료비에 더해 여성 종합건강검진권을 별도 건넸다. 또 쌍둥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진료비 일부 감면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 총장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된 여정 끝에 마침내 한국에 온 세 모녀가 희망을 품고 살아가면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보듬을 것”이라고 약했다.